*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태초의 비주얼, 그리고 장-밥티스트 몬디노의 발견


첫인상은 성숙함과 어린아이다움의 혼합이었고, 그건 지금도 계속된다.
– 장-밥티스트 몬디노
솔로 커리어를 시작하기 전, 비요크Björk는 아이슬란드 인디 밴드 슈가큐브스The Sugarcubes의 보컬이었다. 무대 위 그녀는 거친 펑크를 하는 기묘한 소녀였지만, 장-밥티스트 몬디노Jean-Baptiste Mondino는 밴드라는 보호색을 벗고 홀로 선 비요크에게서 날것의 얼굴을 끄집어냈다. 정면을 응시하는 서늘한 시선, 피부 위로 맺힌 미세한 땀방울과 솜털이 그대로 〈Debut〉의 커버가 되었다.
촬영 당일 비요크가 마르지엘라Margiela의 옷을 입고 싶다고 먼저 말했다. 1990년대 초의 마르지엘라는 옷의 구조를 해체하며 패션의 문법을 파괴하던 브랜드였다. 비요크가 그 이름을 먼저 꺼냈다는 건, 자신의 음악이 시각적으로 어떤 결을 가져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런던의 소음과 에어메일, 스테판 세드나위의 설계


1집이 아이슬란드의 원초적인 공기를 머금고 있었다면, 1995년작 〈Post〉는 런던의 소음과 분주함을 흡수한 앨범이었다. 이 시기의 시각적 정체성을 설계한 사람은 프랑스 출신 사진가 스테판 세드나위Stéphane Sednaoui다. 그는 항공 우편 봉투의 패턴이 새겨진 종이 코트를 입혀 비요크를 런던의 네온사인 앞에 세웠다. 떠나온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이자, 세상 모든 곳으로 발송되는 메시지 같은 이미지였다. 세드나위는 느린 셔터를 의도적으로 써서 배경에 도시의 속도를 스며들게 했다. 이 한 장으로 비요크는 1990년대 비주얼 컬처의 한가운데 선 아이콘이 되었다.
찰나의 박동을 영원으로, 거장 사진가들의 시선

비요크의 얼굴은 앨범마다 다른 지형을 가진다. 〈Homogenic〉(1997)의 커버에서 닉 나이트Nick Knight는 비요크를 전혀 다른 존재로 바꿔놓았다.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이 만든 새틴 기모노, 숀 린Shaun Leane의 코일 넥피스. 인간과 기계, 동양과 서양이 하나로 녹아들어 새로운 인류가 탄생했다. 닉 나이트에 따르면 커버는 촬영 첫 컷에서 완성되었다. 맥퀸은 폴라로이드를 확인하더니 “좋아, 나 갈게”라고 말하고 바로 나갔다.


한편 이네즈와 비누드Inez and Vinoodh 듀오는 16년에 걸쳐 비요크의 내밀한 슬픔과 환희를 포착했다. 〈Medúlla〉(2004)의 헤어피스, 〈Vulnicura〉(2015)의 커버까지. 〈Vulnicura〉 촬영에서 이네즈 반 램스위어드Inez van Lamsweerde는 ‘유혹적이지만 상처 입은 마타 하리Mata Hari’라는 방향을 제안했다. 촬영 중 비요크가 ‘Lionsong’을 부르기 시작했고, 계획된 것은 아니었으나 그 장면이 그대로 뮤직비디오가 되었다.



탐미적인 시선을 가진 아라키 노부요시Araki Nobuyoshi와의 접점도 비요크 쪽에서 시작되었다. 런던 화이트 큐브White Cube 갤러리에서 아라키의 사진집 〈Sentimental Journey〉를 본 비요크가 1996년 일본 투어 중 직접 촬영을 요청했다. 리믹스 앨범 〈Telegram〉의 커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영상의 연금술사, 공드리와 존즈 그리고 커닝햄
크리스 커닝햄Chris Cunningham의 ‘All Is Full of Love'(1999)는 다른 지형에 있다. 흰색 로봇 두 대가 서로를 조립하고 어루만지는 영상. 차가운 금속 표면에서 오히려 서정성이 스며 나오는 순간을 커닝햄은 4분 안에 담았다. 이 영상은 지금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될 만큼 비주얼 아트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는 ‘Human Behaviour'(1993)와 ‘Bachelorette'(1997)에서 아날로그적 상상력과 동화적 리얼리즘으로 비요크의 세계를 구축했고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는 전혀 다른 면을 끌어냈다. ‘It’s Oh So Quiet'(1995)는 할리우드 고전 뮤지컬에 대한 오마주다. 조용한 거리가 갑자기 춤판으로 뒤집히고 비요크가 가로등을 붙잡고 빙글빙글 돈다. 그녀가 가진 연기적 재능과 얼굴의 다양함을 전 세계에 확인시켜 준 사례다.
기술적 자연주의와 앤드류 토마스 황


이러한 기술적 자연주의는 최근의 비주얼 소울메이트인 앤드류 토마스 황Andrew Thomas Huang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앤드류는 MoMA 전시의 핵심이었던 ‘Black Lake'(2015)부터 ‘The Gate'(2017)까지 3D 그래픽과 가상현실로 비요크의 몸을 풍경으로, 풍경을 몸으로 뒤바꾸는 작업을 이어갔다.
최종적 창조주로서의 비요크



이 모든 작업에서 감독과 사진가는 저마다 전혀 다른 사람이지만 결과물은 하나의 세계처럼 보인다. 비요크는 수동적인 뮤즈가 아니었다. 자기 비전에 공명하는 사람을 찾고, 앨범의 캐릭터를 설명하고, 나머지는 맡겼다. 2015년 뉴욕 MoMA 회고전은 그 협업의 기록을 모아놓은 자리였다. 다만 전시 자체는 혹평을 받았다.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의 로버타 스미스Roberta Smith는 비요크의 작업이 미술관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미술관이 그 작업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썼다.
에필로그: 멈추지 않는 변태


비요크는 여전히 바뀌고 있다. 〈Fossora〉(2022)의 커버에서 그녀는 균사체 네트워크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인간보다 더 오래된 것, 초월적인 생태계의 순환 쪽으로 시선이 향해 있다. 커버는 아이슬란드 사진가 비다르 로기Vidar Logi가 레이캬비크Reykjavík 지역 외곽 오두막에서 촬영했다.
예술가들의 협업은 대개 한쪽의 자아를 따라가거나 누구도 다치지 않는 희미한 타협으로 끝난다. 그런데 비요크의 작업들을 쭉 늘어놓고 보면 모든 협업자의 개성이 선명하게 살아 있으면서도 전체가 하나의 궤도 위에 있다. 비주얼리스트들은 그녀를 매개로 자기 작업의 가장 선명한 순간을 남겼고, 비요크는 시대마다 아름답고 기묘한 시각적 유산을 쌓았다. 우리는 비요크를 통해 음악을 눈으로 보고 영상을 귀로 듣는 방식을 익혔다. 지금도 그녀는 어딘가에서 새로운 빛을 내뿜으며 우리가 가보지 못한 지형을 그리고 있을지 모른다. 비요크가 아이슬란드 라디오에서 처음 노래를 부른 지 50년이 되는 2026년,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