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우

editor's note
‘바늘에서 우주선까지.’ 산업디자인이 다루는 폭넓은 세계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가구와 조명, 전자제품, 신발과 로봇까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거의 모든 물건 뒤에는 형태와 기능, 사용자의 경험을 조율해온 산업디자이너의 시간이 놓여 있다.
산업디자인 스튜디오 ‘SWNA’를 이끄는 이석우 역시 그 시간을 오래 지나왔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가 일본에서 가져온 전자제품을 분해하며 물건의 안쪽을 궁금해했고, 이후 조소와 시각디자인, 산업디자인의 경계를 오가며 자신에게 맞는 언어를 찾아갔다. 미국의 ‘퓨즈 프로젝트’와 ‘티그’ 등 서로 다른 성격의 스튜디오를 경험한 뒤, 서울로 돌아와 독립 스튜디오를 세우기까지. 여러 영역을 거친 시간은 곧 자신만의 길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의 디자인이 향하는 곳은 눈에 띄는 하나의 스타일보다 사물의 본질에 가깝다. 아름다움과 기능 중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 제품과 브랜드, 공간과 사용자 경험을 하나의 흐름 안에서 바라보는 방식. 그렇게 완성된 물건은 새로운 형태를 제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움직이고 머무는 방식까지 조금씩 바꾸어놓는다. 어쩌면 이석우가 디자인하는 것은 물건 자체보다, 그 물건과 함께 살아갈 사람의 경험인지도 모른다.
1. 물건을 분해하며 세계를 배우던 소년

— 자주 일본 출장을 다녀오신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남들보다 먼저 새로운 전자제품을 접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때 손에 쥐었던 물건들은 대표님에게 어떤 감각을 남겼나요?
산업디자이너라는 진로를 선택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는 음료 제조 기기를 만드는 일을 하셨고, 제품 수출을 위해 일본에 자주 방문하셨어요. 돌아오실 때면 소니 워크맨이나 전기면도기, 전자계산기, 카메라, 캠코더 같은 제품을 사 오셨죠. 덕분에 일본 전자기업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의 제품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좋아했어요. 특히 프라모델이나 로봇, RC카를 가지고 노는 걸 즐겼고, 아버지가 가져온 물건을 직접 분해해 안쪽을 들여다보기도 했죠. 어른이 된 뒤 돌아보니, 어린 시절 제 안에 쌓인 자양분은 이미 산업디자인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 물건을 분해하던 기억처럼, 지금까지 대표님의 태도에 남아 있는 유년 시절의 장면이 또 있을까요?
고등학생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소설을 읽었던 경험이 떠올라요. 대부분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그 안의 인물들이 인상 깊었어요. 혼자 힘으로 무언가를 시도하고, 사회의 질서에 거세게 저항하는 사람들이었죠. 하루키의 글에는 집단과 개인 사이의 갈등 속에서도 한 사람의 개성을 지키려는 태도가 담겨 있다고 느꼈어요. 저 역시 단체 활동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곤 했는데, 어쩌면 그때 읽은 소설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다만 그 덕분에 다른 사람의 기준보다 제 내면에 더 오래 집중할 수 있었어요.

쾌적한 업무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다. Ⓒkiosk
— 그렇게 혼자만의 감각을 키우던 소년은 서울예술고등학교 조소과에 진학했습니다. 여러 미술 분야 가운데 조소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아 예고 진학을 준비하며 한국화와 서양화, 조소, 디자인을 조금씩 모두 경험해봤어요. 흥미만 놓고 보면 디자인이 가장 재미있었지만, 당시 제가 더 잘했던 건 조소였어요. 그래서 대학도 조소과에 지원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죠. 마침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잘하는 것보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따라가 보자는 마음으로 결국 디자인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 재수 끝에 들어간 산업디자인과는 기대했던 세계와 조금 달랐다고요. 그 간극 속에서 오히려 시각디자인을 가까이하게 되셨죠.
지금 돌아보면 당시의 교육 과정이 저와 잘 맞지 않았어요. 오히려 시각디자인과를 동경했죠. 시각디자인과 친구들은 세련된 매킨토시 컴퓨터 앞에 앉아 편집 디자인을 배우는데, 저희는 물건을 직접 만드느라 온종일 사포질을 하기 일쑤였거든요. 스케치를 제대로 못 하면 교수님께 혼나기도 했고요. 그래서 시각디자인을 복수전공하며 포스터 작업에 몰두했어요. 포스터 디자인이 필요한 아르바이트를 찾아 지원하고, 교회 행사 포스터를 만드는 일에도 자원했죠. 지금 생각하면 한쪽을 선택하기보다 제가 궁금한 영역을 계속 오가며 배웠던 것 같아요.
한쪽에는 아버지가 가져온 전자제품이, 다른 한쪽에는 하루키의 문장과 조소의 물성이 있었다.
이석우는 물건을 분해하며 구조를 익혔고, 혼자만의 독서를 통해 개인의 감각을 지키는 법을 배웠다.
정해진 한 영역에 머물지 않으려는 태도는 이미 그때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SWNA 사무실 한편에는 크기와 비례를 달리해 제작한 목업들이 작업의 과정이자 아카이브로 남아 있다. Ⓒkiosk
— 2002년 삼성디자인멤버십 인턴십을 통해 미국 LA에서 생활하셨습니다. 산업디자인에 확신을 갖지 못하던 시기, 낯선 도시에서 마주한 디자인은 대표님의 시야를 어떻게 바꾸었나요?
방황하던 제가 산업디자인에 온전히 몰두하게 된 시간이었어요. LA의 삼성전자 모바일랩에서 일하며 당시 주목받기 시작한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직간접적으로 접했고, 산업디자인에 대한 제 편견도 완전히 깨졌죠. 지금은 거장으로 불리는 후카사와 나오토Naoto Fukasawa,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 콘스탄틴 그리치치Konstantin Grcic, 로낭과 에르완 부홀렉Ronan & Erwan Bouroullec 형제의 디자인을 그때 처음 제대로 봤어요. 특히 후카사와 나오토가 디자인한 ‘플러스마이너스제로(±0)의 가습기’는 충격적이었죠. 형태와 색은 극도로 단순했지만 도자기를 연상시킬 만큼 아름다웠어요. 전자제품도 하나의 예술적인 오브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산업디자인을 대하는 태도도 훨씬 진지해졌어요.
2000년대 초, 산업디자인은 사용성과 심미성의 경계를 새롭게 넓혀가고 있었다.
조너선 아이브의 전자제품, 필립 스탁의 가구, 무인양품의 벽걸이형 CD 플레이어처럼
일상을 바꾼 물건들은 이석우가 품고 있던 편견을 걷어냈다.
기능을 수행하는 제품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발견.
그것은 방황하던 이석우를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끈 첫 번째 전환점이었다.

— 대학교 졸업 작품 〈음악을 비추고 빛을 만지다Spot Light the Music and Touch the Light〉는 당시 한국 대학생 최초로 미국 IDEA 금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서로 다른 감각을 하나의 제품 안에 결합한 작업이었죠.
2004년 4학년 1학기에 삼성전자 입사가 결정되면서 2학기에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겼어요. 그 시간을 졸업작품에 온전히 쏟았죠. 〈음악을 비추고 빛을 만지다〉는 CD 플레이어와 조명을 결합한 작업이에요. 음악을 재생하면 조명이 켜지고, 빔프로젝터가 투사한 화면을 터치해 CD 플레이어를 조작하도록 만들었어요. 시각디자인과 산업디자인을 오가며 배운 것들, 웹 에이전시에서 웹과 모바일 UI를 디자인하며 익힌 감각을 하나의 물건 안에 모아본 작업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좋아하고 배워온 여러 영역이 처음으로 하나의 결과물 안에서 만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 돌이켜보면 이 작품은 훗날 SWNA가 보여줄 방향을 미리 품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품과 그래픽, 기술과 경험의 경계를 나누지 않는 태도 말이에요.
요즘에는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산업디자인 스튜디오가 많아졌지만, 졸업작품을 준비하던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전자제품과 가구, 조명처럼 분야가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었고, 사용하는 방법론도 영역 별로 한정되어 있었죠.
하지만 저는 그때도 지금도 하나의 영역에 갇히고 싶지 않아요. SWNA를 운영하면서도 이 원칙을 꾸준히 지켜왔고요. 서로 다른 분야의 언어와 방법을 연결해온 태도 덕분에 다른 스튜디오보다 조금 더 빠르게 SWNA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2. 낯선 곳에서 배운 디자인의 언어

사물의 구조와 쓰임을 비교하며 다음 디자인의 단서를 찾는 과정에 가깝다. Ⓒkiosk
— 인턴십 이후 삼성전자 입사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지만, 재직 기간은 약 1년 3개월로 짧았습니다. 안정적인 첫 직장을 떠나게 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실제로 온전히 일한 기간만 따지면 1년 정도였을 거예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압축적으로 배웠고, 휴대폰 블루투스 액세서리 제품 하나를 맡아 양산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경험도 했죠. 그러던 중 퓨즈 프로젝트Fuseproject에서 입사 제안을 받았어요. 제 졸업작품을 본 이브 베하Yves Béhar*가 IDEA 시상식에서 인상 깊게 봤다며 명함을 건넸거든요. 꿈꾸던 해외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비교적 빠르게 퇴사를 결정했어요. 삼성전자 인사팀에서도 많이 당황했죠. 한 번 나가면 돌아올 수 없다고 했는데, 저는 괜찮으니 빨리 퇴사 처리해달라고 답했어요. 그리고 퓨즈 프로젝트에 도착하자마자 고생길이 열렸죠. (웃음)
*이브 베하: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이자 샌프란시스코 기반의 산업 디자인 스튜디오 ‘퓨즈 프로젝트’의 설립자. 삼성전자, 허먼밀러 등과 협업하며 인간 중심적이면서도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추구한 제품들을 디자인했다.

— 꿈꾸던 스튜디오에 도착했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던 셈이네요.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이브 베하와 함께 일하기를 기대했지만, 정작 그는 출장이 잦아 직접 협업할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 팀원들과 소통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도 쉽지 않았죠. 작은 오해가 계속 쌓이면서 스트레스가 커졌고, 결국 8개월 만에 퇴사했어요. 힘든 시간이었지만 휴대폰과 음료병, 주얼리 등 서로 다른 영역의 프로젝트를 경험한 덕분에 그곳에서만 배울 수 있는 노하우도 분명히 얻었어요. 기대와 다른 현실을 통과하면서 오히려 제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싶은지도 조금씩 알게 됐죠.

— 이후 옮긴 티그Teague는 상업용 항공기와 대형 운송기기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디자인 컨설팅 기업이죠. 퓨즈 프로젝트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곳이었을 것 같아요.
1926년에 설립된 티그는 보잉과 에어캐나다, 루프트한자, 에미레이트항공 등 세계적인 항공사와 항공기 제조사를 클라이언트로 두고 있어요. 이곳 역시 졸업작품을 본 관계자의 제안으로 이직하게 됐죠. 당시 티그는 항공기 전문 스튜디오와 제품 전문 스튜디오로 나뉘어 있었는데, 저는 제품 스튜디오에서 HP와 LG전자,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프로젝트를 맡았어요.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일했지만, 해외생활이 3년째로 접어들며 향수병이 찾아왔어요. 마침 황성걸, 당시 ‘모토로라 서울 CXD 스튜디오’ 센터장에게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제안받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죠.

이석우는 만년필과 색연필로 선을 겹치며 머릿속 형태를 손의 속도로 구체화한다. Ⓒkiosk
— 3년 남짓한 시간 동안 성격이 다른 기업과 스튜디오를 빠르게 통과했습니다. 그곳에서 익힌 것은 디자인 기술보다 ‘디자인을 대하는 여러 방식’에 가까웠을 것 같아요.
세계 각지에서 온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스케치하는 방식부터 모두 달랐죠. 유럽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의 이야기와 감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스케치는 비교적 거칠게 하는 편이었어요. 유럽 출신은 아니지만 마크 뉴슨Marc Newson의 만화처럼 입체감 없는 스케치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도 나요. 대학에서 배운 방식과는 완전히 달랐는데도 멋진 제품이 완성되는 걸 보며 일부러 따라 그려보기도 했죠. 반면 미국 디자이너들은 미래적이고 혁신적인 방향을 중요하게 여겼어요. 저는 그중에서도 유럽 디자이너들의 방식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그들은 디지털 도구보다 펜과 색연필, 만년필로 스케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 역시 그 영향을 받아 지금도 손으로 그리는 게 가장 편하거든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방식과 업무 스타일, 클라이언트와 디자인 컨설팅을 진행하는 방법까지 지금의 저와 SWNA를 만든 많은 부분을 미국에 있던 당시에 배워온 것들이죠. 다만 그대로 가져오기보다 한국의 환경에 맞게 바꾸어 적용했고요.
낯선 땅에서의 3년은 성공담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기대와 달랐던 현실, 언어의 장벽, 짧은 재직과 연이은 이동은 이석우를 끊임없이 흔들었다.
서로 다른 국적의 디자이너가 생각하고 그리는 방식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시간은,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익히게 했다.
방황은 그렇게 그만의 디자인 언어를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
3. 돌아온 서울, 그리고 독립

맨 처음 낯설었던 이 동네의 고요는 이제 SWNA가 일에 몰입하는 가장 익숙한 배경이 되었다. Ⓒkiosk
— 지금은 휴대폰 시장이 삼성전자와 애플을 중심으로 재편됐지만, 2000년대에는 여러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했습니다. 당시 ‘모토로라 서울 CXD 스튜디오’는 어떤 에너지를 지닌 곳이었나요?
당시에는 노키아와 모토로라, LG전자, 삼성전자 등 여러 기업이 경쟁하고 있었어요. 모토로라는 업계 1, 2위를 다투며 참신한 디자인을 꾸준히 선보였고요. 제가 속한 모토로라 서울 CXD 스튜디오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 판매될 휴대폰을 디자인하는 곳이었어요. 대표적인 프로젝트로 모토로라 최초의 안드로이드폰 ‘모토로이Motoroi’를 꼽을 수 있어요. 디자인부터 양산까지 전 과정을 제가 직접 주관하며 많은 경험을 얻었죠. 디지털카메라를 다루는 듯한 감각을 담고 싶어 특히 제품 뒷면을 세심하게 디자인했어요.
— 수석 디자이너로 3년을 보낸 뒤 다시 안정적인 조직 밖으로 나왔습니다. 독립을 결심하게 만든 것은 어떤 마음이었나요?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까지 개인 작업을 계속했어요. 친구들과 모여 평소 만들고 싶었던 가구와 조명을 원 없이 디자인했죠.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대림건설(현 DL건설)의 아파트 콘센트와 스위치, 온도조절기, 리모컨을 디자인하게 됐어요. 프로젝트의 규모와 수가 점차 늘면서 독립 스튜디오로 운영해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삼성전자 인턴 동기였던 송봉규 디자이너와 각자의 이름에서 이니셜을 따 ‘SWBK’라는 이름으로 2011년 스튜디오를 시작했어요. 공동대표로 회사를 운영하다가 서로의 방향이 달라 분사를 결정했고, 2016년 ‘Suk Woo and Associates’의 약자인 SWNA로 이름을 바꿨어요. 재동에 사옥을 짓고 지금까지 이곳에 머무르고 있고요.


— 재동은 잠원동과 상수동에 이은 세 번째 동네죠. SWNA의 리듬과 잘 어울리는 동네인 것 같은데요.
처음부터 재동을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한남동이나 신사동, 이태원 부근을 알아봤는데 여러 사정으로 가지 못하게 되면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곳이었죠. 이전 사무실은 모두 주변이 활기차고 시끌벅적한 동네에 있어 처음에는 이곳의 한적함이 낯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조용한 분위기 덕분에 업무에 깊이 집중할 수 있어 좋아요.
— 사옥 설계에도 직접 참여하셨다고 들었어요. 제품을 디자인할 때처럼, 이 공간 역시 안에서 일어날 행위부터 생각했다고요.
친구인 김영아 건축가가 구조 설계를 맡았고, 저는 외관과 파사드를 디자인했어요. 실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먼저 생각한 다음 그에 맞춰 외관을 구성했죠. 디자이너들은 스케치나 레퍼런스 이미지를 벽에 붙여가며 작업하기 때문에 창 없이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벽이 많이 필요해요. 동시에 충분한 빛도 들어와야 하고요. 그래서 일반적인 건물보다 창의 크기는 키우되 개수는 줄여, 채광과 작업용 벽면을 함께 확보하려 했어요.

— 오랜 시간 밤샘을 당연하게 여기다가 지금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일하는 리듬을 지키고 계십니다. 일하는 시간을 바꾸자 디자인과 삶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만든 루틴이에요. 저도 예전에는 밤샘 작업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점심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오후 6시 전에 퇴근하면 오전에만 일한 듯 어색할 정도였죠. 그렇게 지내다 보니 건강이 나빠지고 번아웃도 찾아왔어요. 목과 허리 디스크가 터진 적도 있고요.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생활 습관을 완전히 바꿨어요.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최대한 집중해서 일하고, 그 이후에는 반드시 퇴근해 운동하고 사우나에서 몸을 풀어요. 집에서 저녁을 먹고 밤 10시쯤 잠들어 오전 6시에 일어나고요.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 뒤 사옥에 도착하면 8시가 돼요. 중요한 외부 일정이 없다면 오전에는 대부분 회사에 머물고, 미팅도 가능하면 사옥에서 진행해달라고 부탁드려요. 온전히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죠.

유명 기업과 세계적인 스튜디오를 빠르게 통과한 이석우의 최종 목적지는 독립이었다.
자신이 배운 여러 언어를 서울의 환경에 맞게 다시 조율했고,
일하고 싶은 방식부터 함께 일할 사람을 맞이하는 아침의 공기까지 직접 설계했다.
SWNA는 그렇게 하나의 회사이기 전에, 디자인을 오래 지속하기 위한 삶의 구조가 되었다.
— 흥미롭게도 SWNA의 하루는 대표님이 구성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들었어요. 아침의 풍경을 들려주세요.
사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음악을 틀고 공기청정기를 켜요. 인센스를 피우고 룸 스프레이를 사무실 곳곳에 뿌리죠. 식물에 물을 주고, 디자이너들이 출근하자마자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커피메이커도 미리 켜둬요. 창문을 하나씩 열어 환기하고 블라인드도 모두 올리고요. 저와 함께 일하는 SWNA의 구성원들을 매일 찾아오는 손님처럼 생각해요. 최대한 좋은 환경에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공간을 준비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8시부터 한두 명씩 출근하고, 9시 30분쯤 모두 모여 업무를 시작해요. 일찍 온 만큼 일찍 돌아갈 수 있도록 권하고 있고요. 저부터 그 리듬을 지키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