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나보코프가 발견한 각자의 인생, 자기만의 방

타인의 공간을 구경하는 것은 왜인지 흥미롭다. 20세기 후반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페렉은 사물이 욕망을 드러낸다고 했다. 도미니크 나보코프는 1995년부터 사물이 놓인 타인의 공간을 찍어왔다. 〈뉴요커〉의 커미션으로 시작된 〈Living Rooms〉 시리즈. 뉴욕(1998), 파리(2002), 베를린(2017). 세 권의 책, 수십 개의 방. 수전 손택, 앨런 긴즈버그, 이브 생로랑, 데이비드 치퍼필드. 유명인들의 이름은 등장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없다. 하지만 더 긴밀히 드러나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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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가 발견한 각자의 인생, 자기만의 방

타인의 공간을 구경하는 것은 왜인지 흥미롭다. 20세기 후반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페렉은 사물이 욕망을 드러낸다고 했다. 도미니크 나보코프는 1995년부터 사물이 놓인 타인의 공간을 찍어왔다. 〈뉴요커〉의 커미션으로 시작된 〈Living Rooms〉 시리즈. 뉴욕(1998), 파리(2002), 베를린(2017). 세 권의 책, 수십 개의 방. 수전 손택, 앨런 긴즈버그, 이브 생로랑, 데이비드 치퍼필드. 유명인들의 이름은 등장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없다. 하지만 더 긴밀히 드러나는 것이 있다.

Editorial

나보코프가 발견한 각자의 인생, 자기만의 방

타인의 공간을 구경하는 것은 왜인지 흥미롭다. 20세기 후반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페렉은 사물이 욕망을 드러낸다고 했다. 도미니크 나보코프는 1995년부터 사물이 놓인 타인의 공간을 찍어왔다. 〈뉴요커〉의 커미션으로 시작된 〈Living Rooms〉 시리즈. 뉴욕(1998), 파리(2002), 베를린(2017). 세 권의 책, 수십 개의 방. 수전 손택, 앨런 긴즈버그, 이브 생로랑, 데이비드 치퍼필드. 유명인들의 이름은 등장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없다. 하지만 더 긴밀히 드러나는 것이 있다.

*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방의 공기를 일순간 담아내는 나보코프의 작업 방식

부여된 것도, 변경된 것도 없다.
이것이 내 인테리어 초상화다
- 도미니크 나보코프(Dominique Nabokov)

각자의 인생, 자기만의 방. 한 사람이 머무는 방은 그 삶이 응축되어 있다. 주인이 잠시 떠난 방에 놓인 물건들은 마치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놓여 있다. 왜 그 자리에, 왜 그렇게 있는지 알 수 없다. 거기에 단서가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이 파편화된 흔적처럼.

Tom Sachs, artist, in Little Italy ⒸGalerie Patricia Dorfmann
Yves Saint Laurent, fashion designer, photographed in Paris, 2002 ⒸApartamento

도미니크 나보코프Dominique Nabokov는 인물을 찍지 않지만 사람을 담는다. 정확히는 얼굴을 프레임 안에 담지 않는다. 그녀가 뷰파인더를 통해 포착하는 것은 주인이 자리를 비우거나 혹은 영영 떠나버린 방이다. 1995년  〈뉴요커The New Yorker〉의 커미션 워크로 시작된 그녀의 ‘리빙 룸Living Rooms’ 프로젝트는 이후 이십여 년에 걸쳐 뉴욕1998, 파리2002, 베를린2017이라는 세 개의 거대한 도시적 서사를 담은 사진집 3부작으로 완성되었다. 수전 손택Susan Sontag,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 등 시대를 주도했던 지성과 예술가들의 이름이 목록을 채우지만, 어떤 사진 속에서도 그들은 자리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숨 쉬고, 사유하던 방의 공기가 보인다.

Carine Roitfeld, editor-in-chief of French Vogue, and Christian Restoin, Paris, 2001 ⒸApartamento

나보코프은 다큐멘터리처럼 엄격하게 불개입 원칙을 따랐다. 조명 없이, 물건을 옮기거나 연출하지 않고 공간을 더 멋지게 보여주려는 행위도 하지 않았다. 오직 단종된 폴라로이드 컬러그래프 필름과 카메라 한 대로 공간이 지닌 본연의 빛과 그림자를 있는 그대로 담는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인화되며 사후적인 수정이나 크롭이 불가능한 폴라로이드라는 매체의 특성은, 연출과 왜곡의 개입을 원천 차단하는 강력한 장치가 된다. 그래서 나보코프가 남긴 결과물들은 오히려 고해상도 인물 사진보다 한 인물을 선명하게 폭로한다. 한 명의 사람이 오랜 시간 머물며 만들어낸 생활의 궤적은 사물의 배치와 마모된 공간에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실이라는 가장 정교한 초상화

Susan Sontag’s New York living room ⒸApartamento

수전 손택의 뉴욕 거실을 들여다보자. 그녀의 글이 주는 밀도와 상반되는 거실의 여유로움. 벽난로 위의 인물 사진, 창가를 채운 스테인드글라스, 한쪽에 세워진 조명 장비 같은 사물들에서 사유의 시간을 짐작 해본다.

Allen Ginsberg’s kitchen, with an unkempt sink ⒸApartamento

이와 정반대의 지점에서 인간적 본질을 드러내는 곳이 바로 앨런 긴즈버그의 주방이다. 1920~30 년대 초반 태어난 이들을 가리키는 일명, ‘비트 세대Beat Generation’를 이끌며 기성의 권위와 위선을 매섭게 몰아붙였던 저항 시인의 내면은, 그의 정돈되지 않은 싱크대와 손때 묻은 찻잔에서 가감 없이 드러난다. 냉장고 문에 자석으로 삐뚤어지게 붙여놓은 메모들, 생활의 얼룩이 그대로 남아 있는 조리대 공간은 그가 활자 속의 거창한 영웅이 아니라, 매일 이 좁은 주방에서 소박하고 때로는 남루한 끼니를 때우며 생을 지속했던 한 명의 구체적인 인간이었음을 말해준다. 나보코프는 인물이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 했던 사회적 가면을 걷어내고, 그 가면 뒤에 숨은 날것의 일상을 포착해 낸다.

필름의 소멸과 도시의 온도: 흑백 서사

Sasha Waltz, choreographer, and Jochen Sandig, cultural entrepreneur, in Mitte, 2014 
ⒸApartamento

프로젝트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베를린 시리즈에 이르러 나보코프는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 오랫동안 고집해 왔던 폴라로이드 컬러 그래프 필름의 재고가 완전히 소진되어 더 이상 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작업을 멈추는 대신 흑백 폴라로이드 필름으로의 전환을 선택하며 작업에 새로운 결을 부여한다. “베를린은 원래 내 눈에 흑백으로 보인다”라는 그녀의 짤막한 고백은, 도시 하나가 가진 정체성이 마침 매체가 가지게 된 물리적 한계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넘어섰는지 볼 수 있는 변곡점이 된다.

The Berlin apartment of Sir David Chipperfield and Dr. Evelyn Stern, photographed in 2014
ⒸLiving Rooms by Dominique Nabokov

영국의 거장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베를린 미테 거실을 찍은 사진은 이러한 흑백의 미학이 극대화된 공간이다. 장식을 배제한 노출 콘크리트 벽면과 매끄러운 파노라마 유리창으로 구획된 이 방은 극단적인 미니멀리즘과 기하학적 질서의 극치를 달린다. 나보코프 스스로도 그 압도적인 공간감 앞에서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듯한 이질감을 느꼈다고 회고했을 정도다.

고층빌딩이 많고 시끄러운 곳에서는
고요함을 간직한 건물이
더 큰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

그러나 이 차가운 건축적 이성의 결정체 속에서도 나보코프의 시선은 결국 인간의 체온이 머물렀던 흔적을 찾아낸다. 직선과 면이 지배하는 거대한 테이블의 한구석, 무심하게 놓여 있는 엘리자베스 2세의 사진집 한 권이 바로 그 증거다. 이 사소한 물건은 엄격한 모더니스트 건축가 이면에 존재하는 개인적인 취향과 영국인으로서의 정서 그리고 어떤 사적인 기억을 조용히 흘린다. 사람은 완전히 통제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발견되는 인간적인 흔적이 그 사람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전시의 시대, 연출된 타임라인에 던지는 반문

Paris Living Rooms by Dominique Nabokov ⒸApartamento

도미니크 나보코프의 오래된 낡은 폴라로이드 사진들이 지금, 이미지 과포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울림을 주는 이유는 뭘까 생각했다. 오늘날 SNS의 타임라인은 종종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디스플레이 존으로 활용된다. 연출된 생활은 마치 전시처럼 사람의 정체성을 편집해서 보여줄 수 있으니까. 나보코프의 사진은 이런 점에서 정반대 편에 있다. 사람이 사라진 그녀의 프레임 속에서 방은, 주인의 내면을 가장 솔직하게 폭로한다. 오래된 컵의 커피 자국, 가죽 소파의 깊은 주름, 안락의자 옆에 놓여있는 안경들은 그 사람의 실제 습관과 내밀한 피로, 들키지 않은 외로움을 발견하게 한다.

거실, 한 사람의 내면과 생활 방식이 투영된 공간

The Paris home of jewellery and fashion designer Loulou de la Falaise
and editor-writer Thadée Klossowski, photographed in 2002. ⒸApartamento

사람은 혼자 있을 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문을 닫고 혼자가 된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물건을 내려놓는 위치, 자주 쓰는 사물들, 청결함과 사물의 흐트러짐은 한 인간의 정신적 상태와 삶을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투영한다.

ⒸApartamento

“당신의 거실이 당신을 드러낸다Your living room betrays you”라는 나보코프의 말은 프로젝트 전체를 관통하는 통찰이다. SNS를 통해 우리를 세련되게 편집해 올려도 내가 매일 밤 돌아가 몸을 뉘이는 공간의 구석들은 마치 거울처럼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비춘다. 그녀의 작업이 보여주는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재미에 있지 않다. 그것은 연출과 왜곡이 기능이 되어버린 시대에, 즉각성이 주는 한계와 철저한 불개입을 통해 확보한 ‘지독한 솔직함’에 대한 신선함이다. 사람의 단편은 그 사람이 남긴 사소하고 남루한 흔적에서 가장 솔직하고 인간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투박한 폴라로이드 한 장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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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가 발견한 각자의 인생, 자기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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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함의 여행, 조선의 이름 없는 항아리가 바다를 건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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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에 앞서, 소니 그리고 모리타 아키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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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함이라는 가업, 계승되는 천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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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산업 유산의 미학적 환생, 무덱과 폰다지오네 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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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요크의 시각적 유산, 그 궤도를 수놓은 비주얼리스트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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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찰나를 포착했던, 하이엔드 포인트 앤 슛 카메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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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빙 펜에서 더 로우까지, 비워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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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구아다니노가 그린, 에로스와 타나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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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은 빈 방에서 태어난다, 도널드 저드와 릭 루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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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들의 영혼을 깨운 무구한 사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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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스카르파와 아바텔리스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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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실재가 빚어낸 초현실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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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제약, 상상력을 붙잡아두는 창조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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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 움베르토 에코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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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자키 쿄코와 도시적 에로티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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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라는 완벽한 질서, ‘우연 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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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흔적을 지우는 기술, 스프레차투라에 대하여

08

미완성과 우연의 초상, 〈휘슬재킷〉

07

악의 미학을 위한 클래식

06

손의 여운, 사물이 살아 있는 시간: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

05

첫 권의 문학: 세계를 여는 방식에 대하여

04

연옥 단계의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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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콜렉투스 – MoMA가 수집한 사물들

02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시지프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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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오키프와 마이크로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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