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High-SENSE] 이석우 vol.2 기능과 아름다움 사이, 이석우가 지키는 것

좋은 디자인은 새로운 형태를 더하는 일이 아니라, 기능과 아름다움 사이에 남은 어색함을 끝까지 덜어내는 일이다. 이석우는 그 판단을 가구와 조명, 전자제품과 로봇, 주거 공간과 트로피, 러닝화까지 서로 다른 세계에서 반복해왔다. 다루는 대상마다 쓰임과 조건은 달라지지만 출발점은 늘 같다. 이 물건은 왜 존재해야 하며, 사람의 일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그가 산업디자인을 고운 체로 흙을 거르는 일에 비유하는 이유다. SWNA의 일관성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에 닿을 때까지 질문하고 덜어내는 방식에서 만들어진다.

Editorial

[High-SENSE] 이석우 vol.2 기능과 아름다움 사이, 이석우가 지키는 것

좋은 디자인은 새로운 형태를 더하는 일이 아니라, 기능과 아름다움 사이에 남은 어색함을 끝까지 덜어내는 일이다. 이석우는 그 판단을 가구와 조명, 전자제품과 로봇, 주거 공간과 트로피, 러닝화까지 서로 다른 세계에서 반복해왔다. 다루는 대상마다 쓰임과 조건은 달라지지만 출발점은 늘 같다. 이 물건은 왜 존재해야 하며, 사람의 일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그가 산업디자인을 고운 체로 흙을 거르는 일에 비유하는 이유다. SWNA의 일관성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에 닿을 때까지 질문하고 덜어내는 방식에서 만들어진다.

Editorial

[High-SENSE] 이석우 vol.2 기능과 아름다움 사이, 이석우가 지키는 것

좋은 디자인은 새로운 형태를 더하는 일이 아니라, 기능과 아름다움 사이에 남은 어색함을 끝까지 덜어내는 일이다. 이석우는 그 판단을 가구와 조명, 전자제품과 로봇, 주거 공간과 트로피, 러닝화까지 서로 다른 세계에서 반복해왔다. 다루는 대상마다 쓰임과 조건은 달라지지만 출발점은 늘 같다. 이 물건은 왜 존재해야 하며, 사람의 일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그가 산업디자인을 고운 체로 흙을 거르는 일에 비유하는 이유다. SWNA의 일관성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에 닿을 때까지 질문하고 덜어내는 방식에서 만들어진다.


이석우

Ⓒkiosk

editor's note
좋은 디자인은 새로운 형태를 더하는 일이 아니라, 기능과 아름다움 사이에 남은 어색함을 끝까지 덜어내는 일이다. 이석우는 그 판단을 가구와 조명, 전자제품과 로봇, 주거 공간과 트로피, 러닝화까지 서로 다른 세계에서 반복해왔다. 다루는 대상마다 쓰임과 조건은 달라지지만 출발점은 늘 같다. 이 물건은 왜 존재해야 하며, 사람의 일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그가 산업디자인을 고운 체로 흙을 거르는 일에 비유하는 이유다. SWNA의 일관성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에 닿을 때까지 질문하고 덜어내는 방식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높은 기준은 감각이 살아 있을 때만 지킬 수 있다. 이석우가 소속 디자이너들을 위해 ‘리버럴 오피스’를 만들고, 익숙한 산업디자인의 문법에서 벗어나 첫 예술 작업을 시도한 것도 그 감각을 소진하지 않기 위해서다. 정해진 시간에 일을 멈추고 몸의 리듬을 회복하는 생활, 오래된 자동차의 떨림과 스위치의 물성을 직접 느끼는 취미 역시 일과 분리된 시간이 아니다. 제품과 공간, 브랜드와 경험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에 이석우가 지키는 것은 특정한 스타일이 아니다. 사물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판단과, 그 판단을 오래 이어갈 수 있는 감각의 상태다.


1. 일상의 감도를 설계하는 SWNA

2011년 SWBK 시절 함께 론칭한 가구 브랜드 매터앤매터의 목제 의자.
인도네시아의 오래된 집과 트럭, 어선에서 회수한 옛 티크 자재를 수작업으로 다듬고 산업디자인의 정교한 설계 방식을 더해,
재료가 품은 시간과 구조적 완성도를 함께 살렸다. Ⓒkiosk

SWNA의 포트폴리오에는 가구와 조명, 로봇, 전자기기, 신발과 공간까지 서로 다른 세계가 공존합니다. 처음부터 이처럼 넓은 스펙트럼을 그리고 계셨나요?

맞아요. 넓은 스펙트럼은 SWNA의 장점이자 차별점이에요. 다루는 영역은 다양하지만 각각의 분야에는 깊이 있게 접근하려고 해요. 한두 번 가볍게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판매되는 제품이라면 대부분 기획부터 최종 양산까지 책임지고 관리하죠. 사내에는 산업디자이너뿐 아니라 UX 디자이너와 그래픽 디자이너도 함께 일해요. 덕분에 제품의 형태에만 머물지 않고 브랜딩과 사용자 경험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다룰 수 있어요.
10년 넘게 여러 분야의 프로젝트를 이어오면서 디자인 리서치와 전략 수립, 선행 디자인 의뢰도 많이 받고 있어요. 당장 판매할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 관점에서 기업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나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하는 일이죠.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와 맞닿아 있어 외부에 알릴 수 없거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공개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 SWNA 웹사이트에 소개된 작업은 전체 프로젝트의 40% 정도에 불과하죠.

©SWNA
2019년 푸르지오의 외관, 내부, 시설, 환경, 조경, 상점, 커뮤니티 시설, 간판, 공공 가구 및 전기 설비 등 모든 요소에 대한 총체적인 디자인 및 자재 계획을 담당했다. ©SWNA

주거 브랜드와 함께한 프로젝트도 눈에 띕니다. 대표님이 생각하는 좋은 집의 기준은 무엇이며, 그 감각은 브랜드의 공간에 어떻게 스며드나요?

저는 이제 막 문을 연 화려한 건축물보다 그 터의 특징과 기운을 잘 받아들이는 주거 공간을 좋아해요. ‘고전’이나 ‘빈티지’라 부르는, 멋스럽게 나이 든 디자인은 본질을 제대로 구현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음을 움직인다고 생각해요. 건축도 마찬가지고요. 최근의 아파트는 효율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그런 근본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채광과 환기, 물의 순환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데 본질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공간을 바라보고 제안하려 해요.
럭셔리 주거 브랜드는 흔히 해외 유명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는데, 그렇다보니 결과물은 아름답지만 때로는 건축가의 이름이 앞에 서면서 정작 브랜드의 정체성이 희미해지기도 하죠. 누가 설계하더라도 브랜드 고유의 디자인 언어가 이어질 수 있도록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이 필요해요. SWNA가 참여한 주거 프로젝트 대부분이 그런 작업이었어요. 독립 전 대림건설과의 협업을 시작으로 푸르지오, 힐스테이트, 대우 써밋, 디에이치, 더샵, 디에트르 등 여러 주거 브랜드와 일했죠. 건축이나 인테리어만 놓고 보면 SWNA보다 뛰어난 스튜디오가 국내외에 많죠. 하지만 브랜드와 제품, 공간, 사용자 경험을 폭넓게 연결하면서도 각 영역에서 높은 완성도를 유지하는 곳은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2019년 리그 오브 레전드 코리아컵 트로피. 플레이어들을 상징하는 140여 개의 선이 뻗어가는 조형으로 플레이어들의 노력, 성장, 승리를 표현했다. ©SWNA

대표님의 프로젝트 중에서, 트로피 디자인을 논하지 않을 수 없어요. 트로피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과 달리 상징성이 더 큰 물건이죠. 그동안의 프로젝트와는 어떤 점이 달랐나요?

트로피는 사용성이 거의 없는 물건이에요. 수상자가 쉽게 쥘 수 있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조건만 충족하면 되죠. 클라이언트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술가와 트로피를 만들다가 제조와 생산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어 저희를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평창동계올림픽 메달이 공개된 뒤부터 관련 의뢰가 늘었어요. 지금까지 리그 오브 레전드 코리아컵,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LG 구겐하임 어워드 등의 트로피를 디자인했죠. 기능의 제약은 적지만 한 사건과 성취를 상징해야 하고, 동시에 실제 제작까지 가능해야 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밀도의 고민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러닝화 디자인을 위해 모은 프로-스펙스와 타사 제품들 Ⓒkiosk

지난 3월 출시된 프로-스펙스 러닝화 ‘SEAM 26’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 다루는 러닝화에서 대표님은 기능과 아름다움의 균형을 어떻게 찾았나요?

어떤 제품이든 마찬가지지만, 러닝화는 특히 기능과 아름다움의 조화가 중요해요. 산업디자인과 패션디자인의 경계를 함께 다뤄야 하죠. 저도 러닝화를 고를 때 쿠션이 부드러워 발이 편한지, 신었을 때 저와 잘 어울리는지, 실제로 뛰고 싶은 기분을 만들어주는지를 살펴봐요. 프로-스펙스와 협업할 때도 그 감각을 충분히 반영하려 했어요.
러닝화는 처음이었지만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디자인한 경험은 있었어요. 몸에 착용하는 제품은 기본적으로 정지한 형태보다 움직이는 순간을 전제로 바라봐야 해요. 그래서 형태는 간결하게 유지하면서도 움직일 때 역동적으로 보이는 요소를 브랜드의 언어에 맞춰 적용했죠. 지난 3월 공개된 제품 외에도 프로-스펙스와 디자인의 방향과 전략을 함께 수립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내년 라인업에서도 SWNA와의 협업이 반영된 결과물을 만나볼 수 있을 거예요.

서로 다른 업계의 언어를 이해하고 하나의 결과물로 조율하는 일도 SWNA의 중요한 능력처럼 보여요. 오랜 협업 끝에 터득한 소통의 방식이 있다면요?

예전에는 디자인에 대한 제 주장과 고집이 강했어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려 했죠. 지금은 무엇보다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으려고 노력해요. SWNA의 생각과 클라이언트의 생각이 만나는 교집합을 찾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고요. 기업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순수한 동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내면 그 지점이 디자인을 끌어가는 힘이 돼요. 결국 좋은 결과는 어느 한쪽의 주장보다 서로의 본질이 만나는 자리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구성원들의 아이디어는 함께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며 기능과 아름다움 사이의 균형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kiosk

수많은 선택지를 덜어내며 프로젝트를 완성할 때, 대표님의 감각은 어느 순간에 ‘최종’을 결정짓는지 궁금합니다.

마지막 판단은 철저히 제 감각에 의지하는 편이에요.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기준은 기능과 심미적인 요소가 모두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거예요. 어디에서든 미세하게 어색한 지점이 느껴지면 반드시 다시 손봐야 하죠.
저는 산업디자인 작업이 고운 체로 흙을 거르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여러 번 거를수록 불필요한 것은 사라지고 정제된 흙만 남잖아요. 기능과 아름다움 양쪽에서 더 이상 걸리는 부분이 없을 때, 비로소 작업을 마칠 수 있어요.

옹기토 소재를 활용해 개발한 옹기 타일 스탠드 시리즈. 2024년 영국의 V&A 뮤지엄에 영구 소장되었다. ©SWNA

— 그렇다면 SWNA의 디자인에는 하나의 스타일보다 ‘판단하는 방식’이 공통으로 흐른다고 볼 수 있을까요?

개인의 취향이나 선호는 존재하지만 산업디자이너가 특정 스타일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부홀렉 형제처럼 뚜렷한 조형 언어를 지닌 디자이너가 있고, ‘슈퍼 노멀Super Normal’을 이야기하는 재스퍼 모리슨처럼 단순함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죠. SWNA는 어느 한쪽보다 정중앙을 지키려 해요. 물론 모든 결과물을 마지막에 검토하는 사람이 저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작업이 제 감각을 통과하며 어떤 공통된 분위기를 갖게 될 수는 있겠죠 . 하지만 처음부터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겠다고 의도하지는 않습니다.

— 시대에 따라 기업과 시장이 원하는 형태는 달라집니다. 그 변화 속에서도 대표님이 놓치지 않으려는 디자인의 중심은 무엇인가요?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거창한 철학을 앞세우기보다 먼저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하려 해요. 그리고 제품의 본질을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인간에 관한 질문에 닿게 돼요. 세상의 모든 물건은 결국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사용하니까요.

SWNA의 디자인에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형태보다 일관된 질문이 흐른다.
이 물건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누가, 어떻게 사용하게 될 것인가.
이석우는 소통을 통해 출발점을 찾고, 기능과 아름다움 사이에 남은 미세한 어색함을 걸러낸다.
그렇게 사물의 본질을 향해 갈수록 디자인은 결국 사람에게 가까워진다.

2. 감각을 소진하지 않는 법

2022년 연희동 넌컨템포에서 열린 단독 전시 〈Liberal Office〉.
사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제품들을 소개하고, 판매도 진행했다. ©SWNA

— 2022년부터 소속 디자이너들을 위한 사내 프로젝트 ‘리버럴 오피스’를 이어오고 있는데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서 잠시 벗어나, 각자의 감각과 만들고 싶은 것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마련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SWNA는 소속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매년 4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함께 갔어요. 하지만 2020년 팬데믹으로 해외 출국이 어려워지면서 다른 방법이 필요했죠. 2021년에는 디자이너들이 저마다 자신의 의자를 만들고 결과물을 전시하는 〈맥락 속의 오브제〉를 열었는데, 반응도 좋았고 구성원들도 무척 즐거워했어요. 그걸 보면서 각자의 개성을 지속적으로 펼칠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회성 전시를 ‘리버럴 오피스’라는 프로젝트로 발전시키게 된거죠.
펜 홀더와 북 스탠드, 인센스 스틱, 선반처럼 무엇을 만들지는 각자가 정해요. 소재도 품목도 스타일도 모두 다르죠. 제품 디자인과 개발, 생산에 필요한 비용은 회사가 지원하고, 판매 수익이 생기면 담당 디자이너와 회사가 나눠 가져요. 처음에는 내부 프로젝트로 시작했지만 외부에 알려진 뒤에는 라이마스와 함께 조명을 디자인하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프로젝트가 많아 저를 포함한 구성원 모두 개인 작업에 충분한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내년 중 전시를 연다는 목표로 다시 천천히 준비하고 있어요.

Ⓒkiosk
Ⓒkiosk

— 소속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하나의 물건을 끝까지 만들어본 경험은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꾸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회사 업무에도 실제로 많은 도움이 돼요. 각자가 기획부터 디자인과 생산까지 전 과정을 경험하며 쌓는 노하우가 있거든요.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찾는지, 지나치게 복잡한 디자인은 제조 과정에서 온전히 구현되기 어렵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죠. 그러면서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이전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되고요. 디자이너는 작업할 때 자신이 가진 ‘기술’과 ‘영감’을 모두 꺼내 써야 해요. 하나의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면 다시 감각을 채우는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고요. 리버럴 오피스가 SWNA의 디자이너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확인하고, 소진된 영감을 다시 채우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2인전 〈9.8m/s² Matter〉의 일부.
전시 명을 지구의 중력 가속도에서 따왔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중력을 시각화하고자 했다. ©Leo Kim

— 올해 5월에는 플로리스트 레오 킴과 2인전 〈9.8m/s² Matter〉를 열며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오랫동안 기능과 사용자를 생각해온 산업디자이너가 순수한 표현의 영역으로 향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예전에 다른 프로젝트를 통해 우연히 레오 킴 작가를 만났어요. 이전부터 작가님의 작업을 인상 깊게 보고 있었는데, 작가님도 제 디자인과 SWNA의 행보를 흥미롭게 지켜봤다고 말씀을 주셨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함께 전시를 해보자는 제안으로 발전했죠. 이미 자신만의 스타일이 뚜렷하고 업계에도 잘 알려진 분이, 작가로서는 작업이 전혀 없던 저와 전시하자고 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전시를 준비하며 가장 경계한 것은 익숙한 산업디자이너의 정체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일이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본질을 가장 순수한 상태로 보여주고 싶었죠. 처음에는 미리 구상한 프로토타입과 모델을 발전시킬 계획이었어요. 유려한 곡선을 만들기 위해 철판을 레이저로 절단하려 했고요. 그런데 준비를 이어갈수록 인간의 의도적인 개입을 덜어내고, 오직 물리적인 현상으로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결국 철물점에서 구입한 철판을 가공하지 않은 채 로프와 작은 돌에 연결해 장력과 중력을 시각화했어요. 디자인과 관련된 요소를 의식적으로 배제하며 아름다움과 기능에 대한 제 고정관념을 깨보려 했죠.

올해 9월에 열리는 2026 프랑스 메종 & 오브제에서 선보일 한지 가구와 조명 디자인 작업이 한창이다. Ⓒkiosk

— 완성된 결과를 미리 통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산업디자인과는 정반대에 가까운 경험이었겠네요.

저에게는 무척 신선하고 재미있는 시도였어요. 산업디자인은 대부분 3D 모델링과 렌더링을 거쳐 제품의 형태를 정확하게 확정해야 해요. 하지만 이번에는 대략적인 스케치만 준비한 뒤, 전시장에서 하루 동안 설치하며 작업을 완성했죠. 이 전시를 마치고 나니, 문득 제 내면에 산업디자인만으로는 채우기 어려웠던 새로운 영역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로서 얼마나 주목받았는지와는 관계없이 무척 소중한 시간이었고요. 오직 제 재미와 지적인 호기심에서 시작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시도해보고 싶어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답하는 일이 감각을 바깥으로 확장하는 과정이라면,
리버럴 오피스와 첫 전시는 그 시선을 다시 자신에게 돌려놓는 시간이었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보다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를 묻고,
형태를 완벽히 통제하는 대신 중력과 장력이 만들어내는 우연을 받아들이는 일.
익숙한 디자인의 문법에서 한 걸음 벗어나자, 그동안 미처 꺼내지 못한 감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3. 오래 일하기 위한 삶의 리듬

Ⓒkiosk
Ⓒkiosk

— 많은 프로젝트를 동시에 이끌다 보면 어느 순간 일에 파묻혀 자신의 감각을 잃기 쉽죠. 대표님은 흐트러진 일상을 어떻게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나요?

평소의 루틴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해요. 특히 운동과 독서, 충분한 휴식과 수면은 놓치지 않으려 하고요. 그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일상의 리듬이 금세 깨져요. 스펀지가 바싹 말라 있어야 물을 잘 흡수하듯, 저 역시 몸과 마음의 상태가 좋아야 새로운 것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규칙적인 생활을 지키고, 일 바깥의 취미도 꾸준히 즐기려 합니다.

— 최근 대표님의 SNS에서 ‘2004년형 마세라티 GT 4200 캄비오코르사Cambiocorsa’를 복원하고 있다는 게시물을 보았습니다. 오래된 차를 직접 고치는 시간이 대표님에게 어떤 즐거움을 선사하는지 궁금합니다.

자동차를 복원할 때 전문가에게 맡기는 부분도 있지만, 직접 부품을 찾아 고치는 경우가 많아요. 시트 가죽과 헤드라이트, 시계 같은 부품을 이베이나 아마존에서 하나씩 구입해 작업하죠. 이 차에는 페라리의 4.2리터 V8 자연 흡기 엔진이 들어가 있어요. 요즘의 전기차나 터보 엔진을 탑재한 자동차와는 떨림부터 달라요. 오래된 차를 조작하는 감각, 스위치를 눌렀을 때 손끝에 전해지는 물리적인 반응은 첨단 기기를 디자인할 때 오히려 새로운 영감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등장을 반기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내연기관차를 더 좋아하신다고요. 효율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 때문일까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가 등장하는 흐름은 저도 환영해요. 다만 저는 내연기관차의 떨림과 소리, 손에 닿는 감촉을 무척 좋아해요. 자동차를 이동수단으로만 본다면 전기차도 충분히 좋은 선택이죠. 하지만 탑승하는 동안의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제게는 아날로그 감각을 간직한 오래된 차가 더 잘 맞다는 생각이고요. 전기차를 시승할 기회도 여러 번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운전하는 즐거움을 크게 느끼지 못했어요. 완벽하게 매끄러운 경험보다 손과 몸으로 반응을 주고받는 물건에 더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20세기 산업디자인의 거장, 필립 스탁.
가구, 조명, 생활 소품, 건축, 인테리어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디자인해 왔다.
알레시의 착즙기 ‘쥬시 살리프’, 카르텔의 ‘루이 고스트 체어’ 등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제품들을 디자인했다. ©Philippe Starck

— 오랫동안 현역으로 일하는 디자이너의 태도라는 관점에서, 대표님에게 꾸준히 영감을 주는 인물이 있을까요?

한 사람만 꼽는다면 프랑스 산업디자이너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인 것 같아요. 1980년대부터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으니 40년 넘게 디자인을 이어온 셈인데, 지금도 꾸준히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고 있죠.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디자이너 가운데 이미 은퇴한 사람도 적지 않고요. 필립 스탁의 스타일이나 개별 결과물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오랜 시간 현역 디자이너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 최근 들어 주목하고 계신 디자인 스튜디오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가구와 조명, 오브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스튜디오 힌지, 구오듀오, 비포머티브 세 팀을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제가 산업디자인을 시작할 때만 해도 국내에서는 전자제품 이외의 영역을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독립 디자인 스튜디오가 가구나 조명을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었죠. 2010년대부터 리빙 영역으로 향하는 산업디자이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 팀들도 그 무렵부터 활동을 이어왔어요. 앞선 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팀들이라 계속 지켜보고 있습니다.

요즘 대표님의 시선을 가장 오래 붙잡아둔 브랜드와 공간을 하나씩 들려주세요.

아식스Asics

최근 러닝화를 디자인하며 여러 브랜드를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아식스가 오랜 시간 쌓아온 내공에 감탄하고 있어요. 자세히 볼수록 일본 특유의 집요함이 제품 곳곳에서 느껴지죠. 본사의 아카이브 뮤지엄이 지닌 압도적인 규모도 인상적이고요.

오디오갤러리 청담 쇼룸

요즘 프랑스의 하이엔드 오디오 기업 ‘포칼Focal’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 자주 찾는 곳이에요. 포칼의 최고급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면 클래식 연주를 현장에서 듣는 것보다 오히려 더 실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스위스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골드문트Goldmund’의 스피커도 함께 경험할 수 있고요. 두 브랜드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선명한 소리는 그 자체로 압도적인 감각을 남겨요.

좋은 감각은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오래 일한다고 해서 반드시 선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석우는 오히려 일을 멈춰야 할 시간을 정하고 몸의 리듬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사물의 작은 차이를 알아차릴 여백을 만든다.
오래된 자동차의 떨림과 하이엔드 오디오의 소리, 한 켤레의 러닝화에 축적된 기술은
그렇게 열린 감각을 거쳐 다음 디자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그에게 오래 일한다는 것은 익숙한 방식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좋은 상태로 돌려놓으며 계속해서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는 일에 가깝다.

집무실 벽면에 각종 디자인 시안과 영감을 위한 이미지들을 붙이고 일하는 이석우 대표 Ⓒkiosk

— 마지막으로, 올해 하반기 이석우와 SWNA가 새롭게 펼쳐 보일 장면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프로-스펙스와 함께한 새로운 협업 결과물이 곧 공개될 예정이에요. 포칼의 올인원 오디오 시스템 ‘뮤조 헤클라Mu-so Hekla’를 위한 오디오 스탠드도 현재 양산 중이고요. 그 밖에도 국내외 기업과 진행해온 여러 프로젝트가 차례로 공개를 앞두고 있어요.

06

[High-SENSE] 이석우 vol.3 이석우의 라이프스타일 아이템 5

05

[High-SENSE] 이석우 vol.2 기능과 아름다움 사이, 이석우가 지키는 것

04

[High-SENSE] 이석우 vol.1 하나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

03

[High-SENSE] 김미재 vol.3 김미재의 라이프스타일 아이템 5

02

[High-SENSE] 김미재 vol.2 김미재가 브랜드를 다루는 법

01

[High-SENSE] 김미재 vol.1 도쿄의 잡지, 런던의 물성, 서울의 리듬

00


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