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아일린 그레이와 샤를로트 페리앙, 따뜻한 기하학

파리의 옻칠 침대와 도쿄의 대나무 안락의자. 1920년의 아일린 그레이와 1940년의 샤를로트 페리앙은 각기 다른 재료를 손에 쥔 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사물은 어느 높이에서 사람의 몸을 받아안아야 하는가. 규격화된 치수로 사람을 맞추려 하던 시대에서 두 사람은 반대로 가장 다정한 치수를 재고, 만들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서로 다른 궤적으로 모더니즘을 통과하며 그들이 남긴 흔적들에 관하여.

Editorial

아일린 그레이와 샤를로트 페리앙, 따뜻한 기하학

파리의 옻칠 침대와 도쿄의 대나무 안락의자. 1920년의 아일린 그레이와 1940년의 샤를로트 페리앙은 각기 다른 재료를 손에 쥔 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사물은 어느 높이에서 사람의 몸을 받아안아야 하는가. 규격화된 치수로 사람을 맞추려 하던 시대에서 두 사람은 반대로 가장 다정한 치수를 재고, 만들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서로 다른 궤적으로 모더니즘을 통과하며 그들이 남긴 흔적들에 관하여.

Editorial

아일린 그레이와 샤를로트 페리앙, 따뜻한 기하학

파리의 옻칠 침대와 도쿄의 대나무 안락의자. 1920년의 아일린 그레이와 1940년의 샤를로트 페리앙은 각기 다른 재료를 손에 쥔 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사물은 어느 높이에서 사람의 몸을 받아안아야 하는가. 규격화된 치수로 사람을 맞추려 하던 시대에서 두 사람은 반대로 가장 다정한 치수를 재고, 만들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서로 다른 궤적으로 모더니즘을 통과하며 그들이 남긴 흔적들에 관하여.

*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옻칠이 마르기를 기다린 시간

(왼) Pirogue in Madame Mathieu-Lévy’s apartment on Boulevard Suchet, published in L’Illustration, c. 1933. ⒸNMI.
(오) Madame Mathieu-Lévy reclining on the Pirogue. ⒸNMI.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는 1878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회화를 공부했고, 1900년대 초 파리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녀가 새로 붙잡은 것은 옻칠이었다. 일본인 칠공예가 스가와라 세이조Seizo Sugawara를 만나 기술을 익히며, 한 겹을 올리고 마르기를 기다렸다 다시 칠을 올리는 작업에 십 년 가까운 시간을 썼다. 1917년 파리로 돌아온 그레이는 모자 디자이너 쉬잔 탈보Suzanne Talbot의 아파트를 설계했다. 

Eileen Gray by Berenice Abbott, 1927 ⒸNational Museum of Ireland

하나의 완벽한 가구는 단순한 집기가 아니다.
그것이 놓인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또 다른 건축이다.

─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

(왼) Madame Mathieu-Lévy’s interior featuring Eileen Gray’s iconic lacquered screens, 1922. ⒸThe Cary Collection
(오) Brick Screen, 1922. ⒸMoMA
〈Pirogue〉 daybed ⒸCanadian Architect

벽에는 수백 개의 작은 옻칠 패널이 놓이고 그 앞에 가구와 조명, 러그를 놓았다. 그곳에 데이베드 〈피로그Pirogue〉가 있었다. 이름 그대로 작은 카누를 닮은 형상으로 양 끝이 위로 천천히 솟아올랐고, 갈색 옻칠 표면에는 은박이 얹혔다. 한 사람이 누울 침대라기에는 조각에 가깝고, 예술품이라고 하기엔 용도가 분명한 가구. 오랜 시간 숙련한 옻칠의 매끈하고 깊은 표면을 다루던 그레이는 이후 1920년대 중반부터 크롬 도금 강철과 유리 같은 전혀 다른 소재로 옮겨간다.

한 사람을 위한 집, 백 년을 위한 리조트

A still from the recent hybrid documentary ⒸRise and Shine World Sales

옻칠 작업 이후에 그레이의 다음 시선은 강철로 향했다. 1926년부터 1929년까지 그녀는 장 바도비치Jean Badovici와 함께 남프랑스 로크브륀카프마르탱Roquebrune-Cap-Martin에 별장 E-1027을 지었다. 건축 교육을 받은 적 없는 그녀가 지은 첫 집이었고, 이름은 그녀와 연인이었던 장 바도비치의 이니셜을 숫자로 옮긴 암호였다. 건축을 정식으로 배운 적 없던 그녀는 아돌프 로스Adolf Loos와 게리트 리트벨트Gerrit Rietveld, 그리고 르 코르뷔지Le Corbusier에 자신의 도면을 곁에 두고 스스로 제도를 익혔다고한다. 마흔여덟, 도면을 그릴 줄 모르던 사람은 한계 없는 창작력을 발휘하며 집 안에 놓일 가구도 직접 설계했다. 

(왼) Documentary film, 〈E.1027 – Eileen Gray and the House by the Sea〉 ⒸRise and Shine World Sales
(오) Adjustable Table E 1027 ⒸAram Designs Ltd.
Interior of one of the bedrooms at E-1027. ⒸManuel Bougot

가장 유명한 것은 침대 곁의 ‘E-1027 테이블’로, 누운 사람이 몸을 크게 일으키지 않은 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이 집에서 가구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작은 동작을 따라 움직였다. 그레이는 훗날 집이 살기 위한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껍질이자 확장이며, 그 사람의 정신이 뻗어나가는 자리라고 썼다. 그러나 재료가 바뀌어도 그녀가 사물을 만들던 태도는 변하지 않았고 옻칠이라는 느린 공예에서 산업사회의 차가운 금속으로, 그레이의 모더니즘은 그렇게 이동했다.

설탕 집게에서 온 곡선

Charlotte Perriand at the exhibition 《Proposition d’une synthèse des arts》, Tokyo, 1955. ⒸBildkunst

한편 1940년 6월, 페리앙은 일본 정부의 초청을 받아 도쿄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 중 하나는 대나무로 만든 작은 설탕 집게였다. 페리앙은 그 탄성을 보고 1928년의 강철 안락의자를 대나무로 다시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금속관으로 그렸던 곡선이 가느다란 대나무 살로 바뀌었고 이듬해 다카시마야 백화점에서 열린 전시의 제목은 《선택·전통·창조Selection·Tradition·Creation》 였다.

An adaptation of the tubular Chaise Longue Basculante by Charlotte Perriand, Le Corbusier, and Pierre Jeanneret, 1928. ⒸFrance Channel

야나기 무네요시Yanagi Muneyoshi가 이름 없는 장인들이 반복해서 만든 생활 도구에서 용도의 미를 읽어낸 것도 같은 시대였다. 페리앙이 대나무에서 바라본 것 역시 대나무가 휘어졌다가 돌아오는 힘, 낮게 앉는 생활의 높이, 손으로 반복해 만들어온 접합 방식처럼 이미 오랫동안 사용 속에서 검증된 것들이었다. 흥미롭게도 그들의 방향은 반대였는데 그레이는 옻칠에서 금속으로, 페리앙은 금속에서 나무로 갔지만 몸을 도구 삼아 설계했던 지점은 같다.

Interior of Résidence La Cascade, Les Arcs, French Alps. ⒸArchitectura

이후 예순넷의 샤를로트 페리앙은 프랑스 알프스에 새로운 리조트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레자르크Les Arcs. 약 20년에 걸친 프로젝트에서 그녀는 건축과 인테리어, 가구를 아우르는 작업을 맡았다. 여기서 페리앙이 마주한 문제는 E-1027과 정반대였다. 그레이가 한 사람의 손이 닿는 거리를 위해 테이블 하나의 높이를 조절했다면, 페리앙은 같은 치수를 수천 번 반복해야 했다. 그래서 레자르크에서는 산까지 가구의 일부가 되었다. 발코니와 창은 산을 향해 열어 방은 작게 만들되 시선은 더 멀리 알프스의 능선까지 길어지게 만들며 좁은 방이 답답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는데, 노년에 마지막으로 레자르크를 찾았을 때 페리앙은 신발장의 높이를 지적했다고 한다. 스키 부츠가 예전보다 커져 더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여든을 넘긴 건축가에게 여전히 그런 사소한 치수가 눈에 보였던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라는 공통점

Le Corbusier, Charlotte Perriand, Djo Bourgeois, Jean Fouquet, and Percy Scholefield at the Bar sous le Toit.
ⒸVG Bild-Kunst, Bonn, 2025

이 두 사람에게는 같은 남자의 이름이 등장하기도 한다. 스물네 살의 샤를로트 페리앙은 르 코르뷔지에의 작업실을 찾아갔고, 그녀의 포트폴리오를 본 르 코르뷔지에는 “여기서는 쿠션에 수를 놓지 않습니다.”라며 거절했다. 몇 달 뒤 페리앙은 살롱 도톤에 알루미늄과 유리, 크롬으로 만든 〈지붕 밑 바Bar sous le toit〉를 발표했다. 작품을 본 르 코르뷔지에는 생각을 바꿨고, 그녀를 자신의 스튜디오에 합류시켰다. 이후 페리앙은 피에르 잔느레와 함께 오늘날 LC2, LC4 등으로 불리는 가구의 설계에 깊이 관여했다.

Charlotte Perriand reclining on the Chaise Longue Basculante by Le Corbusier and Pierre Jeanneret, 1928.
ⒸVG Bild-Kunst, Bonn, 2025

한편, 그레이에게 르 코르뷔지에라는 이름은 다른 방식으로 찾아왔다. 장 바도비치의 초대로 E-1027에 머물던 르 코르뷔지에는 “이 벽들을 더럽히고 싶은 격렬한 욕망에 사로잡혔다”며 집의 벽에 여덟 점의 벽화를 그렸다. 흰 벽을 실내 요소로 활용한 그레이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작업이었고 그녀는 이를 훼손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오랫동안 E-1027을 둘러싼 기록에서 그레이의 이름보다 르 코르뷔지에와 그의 벽화가 더 크게 다뤄지기도 했다. 

A still from the hybrid documentary 〈E.1027 – Eileen Gray and the House by the Sea〉, depicting Le Corbusier painting the walls of Eileen Gray’s villa, E-1027. ⒸRise And Shine World Sales

페리앙은 그의 작업실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자리를 만들었고, 그레이는 자신이 만든 집 안으로 들어온 그의 흔적을 견뎌야 했다. 같은 이름이 두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두 사람의 이름을 다시 나란히 놓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창작물들이다. 

(왼) Reconstruction of Charlotte Perriand’s apartment at Place Saint-Sulpice, Paris, 1928. ⒸMich Rossiter
(오) Sketches of graphically inspired carpets by Eileen Gray. ⒸNational Museum of Ireland

그레이는 아흔여덟에, 페리앙은 아흔여섯에 눈을 감았는데 그들이 약 백 년의 생을 바쳐 남긴 것은 견고한 양식이 아닌, 사물이 사람을 다정하게 대하는 방식이었다. 거대한 사조가 시대를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두 사람은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작은 치수를 쥐고 물건을 만들었다. 모더니즘의 기하학적인 점, 선, 면 위로 두 사람은, 인간을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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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린 그레이와 샤를로트 페리앙, 따뜻한 기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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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떠난 뒤, 물건이 남긴 초상 10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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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서늘한 색 블루, 〈서스페리아〉와 〈포제션〉으로 바라본 청회색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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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달에 보낸 0.4mm의 바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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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세 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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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디자인은 스스로 태어난다, 버내큘러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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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름다움을 담은 클래식 카, 그리고 그 옆에 선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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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cm에 머무르는 소박한 시선, 오즈 야스지로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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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에서 목걸이로, 파블로 피카소와 팔로마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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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시선이 만든 총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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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도 로시, 도시의 오래된 기억을 모아 그려낸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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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의 귀환, 낯선 것을 추구하는 인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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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시계, 케이스백에 새겨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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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가 발견한 각자의 인생, 자기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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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함의 여행, 조선의 이름 없는 항아리가 바다를 건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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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에 앞서, 소니 그리고 모리타 아키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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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함이라는 가업, 계승되는 천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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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산업 유산의 미학적 환생, 무덱과 폰다지오네 프라다

21

비요크의 시각적 유산, 그 궤도를 수놓은 비주얼리스트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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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찰나를 포착했던, 하이엔드 포인트 앤 슛 카메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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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빙 펜에서 더 로우까지, 비워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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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구아다니노가 그린, 에로스와 타나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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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은 빈 방에서 태어난다, 도널드 저드와 릭 루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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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들의 영혼을 깨운 무구한 사물들

15

카를로 스카르파와 아바텔리스의 마법

14

찰나의 실재가 빚어낸 초현실의 미학

13

아름다운 제약, 상상력을 붙잡아두는 창조의 도구

12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 움베르토 에코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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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자키 쿄코와 도시적 에로티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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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라는 완벽한 질서, ‘우연 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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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흔적을 지우는 기술, 스프레차투라에 대하여

08

미완성과 우연의 초상, 〈휘슬재킷〉

07

악의 미학을 위한 클래식

06

손의 여운, 사물이 살아 있는 시간: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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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권의 문학: 세계를 여는 방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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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 단계의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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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콜렉투스 – MoMA가 수집한 사물들

02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시지프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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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오키프와 마이크로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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