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오래된 건물 위 새로운 감각, 호텔 K5 도쿄

에도 시대의 상인과 짐꾼들이 건너던 니혼바시는 한때 일본 자본주의의 심장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회색 금융가로 남겨졌던 그 거리에 최근 새로운 공기가 스며들고 있다. 100년 된 은행 건물을 개조한 '호텔 K5 도쿄'는 그 변화의 가장 감각적인 신호다. 오래된 금융도시의 침묵 위로 LP 음악과 커튼, 빛과 식물이 천천히 새로운 시간을 틀어 올린다.

Essay

오래된 건물 위 새로운 감각, 호텔 K5 도쿄

에도 시대의 상인과 짐꾼들이 건너던 니혼바시는 한때 일본 자본주의의 심장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회색 금융가로 남겨졌던 그 거리에 최근 새로운 공기가 스며들고 있다. 100년 된 은행 건물을 개조한 '호텔 K5 도쿄'는 그 변화의 가장 감각적인 신호다. 오래된 금융도시의 침묵 위로 LP 음악과 커튼, 빛과 식물이 천천히 새로운 시간을 틀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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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건물 위 새로운 감각, 호텔 K5 도쿄

에도 시대의 상인과 짐꾼들이 건너던 니혼바시는 한때 일본 자본주의의 심장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회색 금융가로 남겨졌던 그 거리에 최근 새로운 공기가 스며들고 있다. 100년 된 은행 건물을 개조한 '호텔 K5 도쿄'는 그 변화의 가장 감각적인 신호다. 오래된 금융도시의 침묵 위로 LP 음악과 커튼, 빛과 식물이 천천히 새로운 시간을 틀어 올린다.

* 박선영 작가가 직접 선곡한 음악과 함께 에세이를 즐겨보세요.

에도 시대의 말기의 대표적인 우키요에 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Utagawa Hiroshige는 1830년대에 〈동해도 오십삼차東海道五十三次〉라는 목판화 연작을 제작했다. 오늘날의 도쿄인 에도와 교토를 잇는 도로인 ‘도카이도Tokaido’의 53곳 역참의 풍경과 날씨, 여행자와 계절을 생생하게 담아낸 기록화이다. 그중에서 〈니혼바시의 아침 풍경日本橋 朝之景〉은 동해도 연작의 첫 장면을 여는 작품이다. 에도의 상징인 아치형 목조 다리 니혼바시 위로 상인과 짐꾼들, 생선을 멘 행상들이 새벽안개를 가르며 지나가고, 아직 희미한 동틀 녘의 공기 속에서 분주함이 차오른다. 에도의 하루가 깨어나는 순간이자, 도시 번영의 서막을 압축해 보여주는 풍경이다.

쌀과 유행과 자본이 흐르던 거리

2020년 디자인 호텔로 재탄생한 호텔 K5 도쿄 외관 ⒸHotel K5 Tokyo
일본 제1국립은행 별관의 1920년대 모습 ⒸHotel K5 Tokyo

유명 음식점과 약재상, 포목점, 미곡상, 공예품 상점이 빽빽이 들어섰던 니혼바시는 에도 시대 소비문화의 중심지였다. 날마다 다리 아래 선착장에는 지방에서 실려 온 쌀과 다시마, 간장과 생선이 산처럼 쌓였고, 유행하는 비단 문양과 머릿기름, 과자와 부채 같은 기호품들이 맨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메이지 시대에 이르러서는 금융기관과 은행 본점, 최초의 대형 백화점까지 들어서며 일본 최대의 상업지구로 변모한다. 쌀과 생선, 비단과 약재가 오가던 거리 위로 이제는 증권과 어음, 자본의 흐름이 포개졌다. 니혼바시는 “쌀과 생선이 오가던 물길 위에, 이제는 자본이 흐른다”는 말로 스스로의 자부심을 드러냈고, 소설가 시로야마 사부로Saburo Shiroyama는 소설 〈일본은행オレたち花のバブル組〉과 〈관료들의 여름官僚たちの夏〉 같은 경제 소설을 통해 돈의 열기와 노동의 피로가 함께 밴 회색 금융지로서의 니혼바시를 그려냈다. 전후 고도성장과 함께 도쿄의 도시 구조가 급격히 재편되면서 니혼바시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소비와 유행의 중심축은 남쪽의 긴자와 서쪽의 신주쿠·시부야로 이동했고, 도쿄역을 중심으로 한 마루노우치 개발과 함께 대기업 본사와 금융기관이 이동하면서 니혼바시는 점차 ‘옛 상업 중심지’의 분위기를 품게 된다. 여전히 미쓰코시 본점과 다카시마야 백화점의 쇼윈도는 화려하게 빛났지만, 젊은 소비문화와 럭셔리 브랜드의 열기는 긴자와 롯폰기, 오모테산도로 옮겨가며, 니혼바시는 점차 차분한 금융가이자 업무지구에 가까운 얼굴을 띠게 된 것이다.

오래된 은행 건물에 다시 불이 켜지다

조명이 켜진 호텔 K5 도쿄 입구 ⒸHotel K5 Tokyo
아카이 바(Akai Bar) 내부 ⒸSunyoung Park

한동안 조용했던 니혼바시에 최근 미풍의 기운이 불고 있다. 그 훈풍에 휘날리는 깃발 중 하나가 ‘호텔 K5 도쿄Hotel K5 Tokyo’다. 니혼바시 가부토초, 일본증권거래소 바로 뒤편에 자리한 K5는 1923년에 지어진 제1은행 별관 건물을 개조한 디자인 호텔이다. 어쩐지 암호처럼 느껴지는 ‘K5’라는 이름은 그 빗장을 하나씩 풀어야만 그 속내를 보여줄 것만 같다. ‘K’는 이 지역의 행정 지명인 가부토초에서, ‘5’는 건물을 소유했던 ‘헤이와 부동산Heiwa Real Estate Co.Ltd’의 다섯 번째 빌딩이라는 분류 번호에서 가져왔다. 오래도록 방치된 채 철거를 기다리던 100년 전 은행 영빈관의 회생이라니. 생각해 보면 한 치 앞의 운명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는 인간이나 건물이나 다르지 않은지도 모른다. 체크인을 한 날은 공교롭게 주말 오후였다. 깨어있는 건 호텔뿐이라는 듯 주변은 온통 고요했다. 거래소를 드나드는 증권맨들과 호텔 주변의 활기가 혼재된 풍경을 보고 싶다는 바람이 한 줌의 모래처럼 스르르 손에서 빠져나갔다.

객실은 천고가 다른 층보다 높은 4층 로프트 플로어의 19호. 호텔에서는 가끔 복도를 걷는 일조차 매혹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총천연색으로 연출된 미장센 속을 지나는 것 같은 감각 그리고 곧 만나게 될 나만의 방으로 천천히 진입하는 길목. K5는 바로 그런 의미의 ‘복도’를 만들기 위해 꽤 많은 공을 들인 듯하다. 블루와 화이트가 리듬처럼 반복되는 100년 전의 타일 바닥, 노란색과 연두색, 하늘색으로 물든 색유리 벽면, 그리고 창가 아래 분방하게 늘어선 몬스테라와 테이블야자들이 복도에 작은 정글 같은 생기를 불어넣는다. 객실 문은 오래된 동전이나 금고 문을 연상시키는 구릿빛으로, 손잡이를 잡는 순간, 마치 오래된 은행의 비밀 공간 안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인디고 커튼과 LP, 느슨한 밤의 감각

ⒸSunyoung Park

문을 여는 순간, 숨어 있던 방은 내 시선과 움직임을 동시에 붙든다. 세상에서 처음 보는 객실의 레이아웃. 침대는 방 한가운데 놓여 있고, 헤드보드 겸 선반은 천장 끝까지 치솟아 있다. 침대 뒤편 작은 책상 위에서는 LP가 돌아가고 있었다. 인디고 빛 커튼은 침대와 책상, 천장까지 닿은 선반을 둥글게 감싸며 하나의 무대처럼 묶어낸다. 마치 신전 안에 들어온 것 같다. 침대를 둘러싼 커튼은 원기둥처럼 공간을 감싸고, 손끝으로 천을 밀치며 방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일본 전통 가게 앞에 걸린 천 ‘노렌Noren’과 종이로 된 슬라이딩 도어 ‘쇼지Shoji’처럼, 은밀하고 그윽한 기분이 스민다. 자칫 비좁게 느껴졌을 규모의 객실을 디자인만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바꿔놓은 셈이다.

ⒸHotel K5 Tokyo
객실 내부에는 자리한 스웨덴 건축·디자인 스튜디오 클라에손 코이비스토 루네의 ‘말루마’소파와 ‘타케테’의자 ⒸHotel K5 Tokyo

모든 가구와 침대를 벽으로부터 떼어내고 모아 하나의 구심을 만들었다. 4.5m에 달하는 높은 천장과 일본의 천연 소재인 와시和紙로 만든 드롭 펜던트 조명은 그 감각을 더욱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압도적이지만 부드럽고, 디자인적 조형은 처음 보는 종류의 미감을 낳았다. 디자인 호텔이 남겨야만 하는 시각적 강렬함이 K5만의 것으로 고유하게 표현될 수 있었던 건 스웨덴의 건축·디자인 스튜디오 ‘클라에손 코이비스토 루네Claesson Koivisto Rune’가 혼신을 다한 덕분이다. 그들은 모든 객실에 놓인 새빨간 소파 ‘말루마Maluma’와 각진 블랙 의자 ‘타케테Takete’. 그리고 빛과 어둠의 반투명성을 드러내는 드롭 조명을, K5를 위해 디자인했다. 건축뿐 아니라 가구와 조명, 투숙객에게 대여하는 자전거까지 하나의 언어처럼 통일함으로써, 공간 전체를 하나의 감각 안에서 숨 쉬게 만들었다.

객실 한 켠에 배치된 턴테이블과 다양한 LP ⒸHotel K5 Tokyo

TV가 없는 자리를 채운 LP와 턴테이블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투숙객의 감정을 더 돋운다. 방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미국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스콧 코슨Scott Cossu의 앨범 두 번째 트랙은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손님의 체크인 시간을 파악해 직원이 올려둔 음악이 마치 미리 받아 둔 목욕물처럼 공간을 촉촉하고 따듯하게 만들어 둔 걸까. 전진과 망설임 사이를 부유하는 피아노 소리가 커튼 사이를 미끄러지고, 오후의 빛은 엷은 천을 통과해 침대 위로 천천히 번진다. 선반에는 마이클 헤지스Michael Hedges의 〈브렉퍼스트 인 더 필드Breakfast in the Field〉와 밥 도로우Bob Dorough의 〈데블 메이 케어Devil May Care〉를 비롯한 스무 장 남짓한 레코드가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이것들만 다 들어도 긴 밤이 금세 지나가겠네.” 무심코 혼잣말을 했다. 모든 앨범 커버 끝에 붙은 데이Day와 나이트Night 라벨은 지금 이 방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면 좋은지 조용히 귀띔해 준다. 낮에는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빛과 함께 느슨하게 음악을 듣고, 밤에는 턴테이블 바늘이 지나가는 미세한 잡음에 귀 기울이며 천천히 술잔을 비우라고.

경계가 느슨해진, 살아 있는 도시 조각

호텔 K5 도쿄 내부의 카페·다이닝 공간 카페 댄스(CAFE DANCE) 내부 ⒸSunyoung Park
ⒸSunyoung Park

K5는 불분명함, 경계가 흐릿한 상태를 표현하는 일본어 ‘아이마이曖昧’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꽉 짜인 호텔이 되기보다는 카페가 라운지가 되고, 바가 리셉션이 되고, 복도가 일순간 도심 속 오아시스가 되는 작은 단위의 복합체를 꿈꾼 것이다. 낮의 활기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밤의 여백을 채울 고유한 장소로서의 호텔. 손님과 로컬이 모여 섞이고,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고, 휴식과 일이 흐릿해지거나 겹치는 곳으로서의 K5는 ‘잘 디자인된 호텔’이 아니라, 경계가 느슨해진 하나의 살아 있는 도시 조각과 다름없다. K5가 꽂은 니혼바시의 가능성은 ‘디디디 호텔DDD HOTEL’와 ‘소일 니혼바시 호텔SOIL Nihonbashi Hotel’같은 디자인 호텔들, 공예 편집숍 ‘카시카 가부토초CASICA KABUTOCHO’, 날마다 달콤한 빵 냄새를 피워내는 베이커리 ‘파티리스 이즈Pateisserie Ease’로 이어진다. 오늘의 니혼바시는 ‘시대의 자그마한 바램’에 에도의 기억을 담아 알갱이 같은 퍼즐의 궤가 하나둘 맞아가듯 차분하게 갱신되고 있다. “에도의 니혼바시를 새벽에 출발해 줄을 맞춰 길을 나서네”라는 옛적의 에도 유행가가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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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건물 위 새로운 감각, 호텔 K5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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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름으로 설득하는 공간, 코펜하겐 아우도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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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보낸 탐미의 밤, 파리 생 마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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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다른 꿈을 허락하는 집, 가평 아시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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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과 수영장 사이에 맡긴 하루, 도쿄 트렁크 요요기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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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한밤과 아침 사이, 런던 하프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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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지붕들 아래 숨겨진 집, 안트베르펜 줄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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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에 머문 시간, 도쿄 친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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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수필이 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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