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시대의 아름다움을 담은 클래식 카, 그리고 그 옆에 선 여성들

세공된 세계 안에서 누군가가 지시한 대로 말하고, 원하는 이미지를 연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이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 돌아갈 때, 아무것도 개입하지 않은 선택에서 비로소 개인의 취향이 드러난다. 당대의 아름다움을 가장 자기답게 관통했던 인물들이 직접 운전했던 클래식 카의 궤적을 따라 필모그래피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읽는다.

Editorial

시대의 아름다움을 담은 클래식 카, 그리고 그 옆에 선 여성들

세공된 세계 안에서 누군가가 지시한 대로 말하고, 원하는 이미지를 연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이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 돌아갈 때, 아무것도 개입하지 않은 선택에서 비로소 개인의 취향이 드러난다. 당대의 아름다움을 가장 자기답게 관통했던 인물들이 직접 운전했던 클래식 카의 궤적을 따라 필모그래피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읽는다.

Editorial

시대의 아름다움을 담은 클래식 카, 그리고 그 옆에 선 여성들

세공된 세계 안에서 누군가가 지시한 대로 말하고, 원하는 이미지를 연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이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 돌아갈 때, 아무것도 개입하지 않은 선택에서 비로소 개인의 취향이 드러난다. 당대의 아름다움을 가장 자기답게 관통했던 인물들이 직접 운전했던 클래식 카의 궤적을 따라 필모그래피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읽는다.

*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때론 화려한 필모그래피보다 일상의 아주 작은 선택이 그 인물을 더 솔직하게 드러낸다. 동일한 배우가 찍은 서로 다른 영화 속에서도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배우 고유의 미세한 습관이나 결을 눈치채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라면, 프레임 바깥에서의 선택은 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배우란 결국 타인의 삶을 빌려 사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프레임을 벗어난 나의 진짜 일상,
내가 고른 아주 작은 물건 하나만이 내가 진짜 누구인지를 증명해 준다.

─ 메릴 스트립(Meryl Streep)

노마 진의 검은 선더버드

 Marilyn Monroe’s 1956 Ford Thunderbird ⒸThe Classic Car Trust

스튜디오 조명 아래의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는 시대가 만든 얼굴이지만, 운전석에 앉은 그녀는 본명인 ‘노마 진Norma Jeane’에 조금 더 가깝다. 그녀가 평생 소유했던 것으로 확인된 차는 그리 많지 않은데, 그중 하나가 1955년 말 미국 코네티컷Connecticut주에서 구매한 검은색 1956년형 ‘포드 선더버드’이다. 인생에 온갖 풍파가 많았던 그녀지만, 이 차를 소유했던 시기에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다. 운전하는 것을 무척 좋아해, 지붕을 열고 바람을 느끼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걸 즐겼다고 전해진다.

전후 미국 사회의 자유와 낙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이 모델은 순수한 스포츠카의 공격성도, 안정감을 주는 세단도 아닌 그 절묘한 위치가 특징인데, 이 점이 당대 미국이 지녔던 여유로움을 닮았다. 하지만 먼로가 탄 채로 웃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마력이나 최고 속도 같은 구체적인 스펙 대신 지붕을 접고 바람 쪽으로 얼굴을 돌리던 한 사람의 얼굴이 비로소 보인다.

Marilyn Monroe and Arthur Miller driving in her 1956 Ford Thunderbird, New York City
ⒸEstate of Sam Shaw, Westwood Gallery

맨발과 롤스로이스 실버 클라우드

Jacques Héripret, Brigitte Bardot at Rolls-Royce(1968) ⒸMutualArt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의 전성기에는 당대가 요구하던 정형화된 아름다움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전형에서 반 걸음 비켜서서 정돈된 머리보다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를, 드레스보다 셔츠와 데님을 입는 여성이었다. 프랑스 남부 생트로페Saint-Tropez에서의 삶 역시 그러한 자연스러운 태도로 이어진다.

Le Chien Errant – Doggy Bag ⒸMutualArt

그곳에서 즐겨 타던, 바르도가 소유한 ‘롤스로이스 실버 클라우드’는 총 두 대다. 1958년형 ‘실버 클라우드 I 리무진’과 1962년형 ‘실버 클라우드 II 카브리올레Cabriolet’. 롤스로이스는 그때나 지금이나 권위와 성공, 계급의 기호지만 바르도가 그 안에 앉은 모습을 보면, 그녀가 세르주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와 함께 부른 ‘Bonnie and Clyde’라는 노래처럼 어디론가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Rolls-Royce Silver Cloud I(1958) ⒸPhilipp Löhmann
Rolls-Royce Silver Cloud II ⒸRolls-Royce Motor Cars

좋은 취향은 값비싼 물건을 소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물건을 자기 삶 안으로 끌어들여 다른 맥락과 의미를 갖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바르도는 롤스로이스를 품격 있는 위치 그대로 두기보다 좀 더 인간적인 느낌을 덧씌웠다.

라탄 바구니를 실은 르노 4

Movie 1969, Car “R4 Plein Air”

물건을 오래 사용하다보면 사용하는 사람을 닮아가기 마련인데, 제인 버킨Jane Birkin의 차도 그녀의 실용적인 삶을 그대로 닮아갔다. 압도적인 성능도, 우아한 권위도 없는 실용적인 차의 조수석에는 라탄 바구니가, 뒷좌석에는 아이들의 물건이 실렸다. 취향을 전시하는 오브제가 아니라 닳고 낡아가는 일상을 그대로 담아내는 편안한 물건. 그 차가 바로 세계 최초의 해치백Hatchback*인 ‘르노 4’다.

*해치백: 외관상 뒷좌석 공간과 적재 공간이 합쳐져 있는 승용차로, 뒷유리까지 포함된 트렁크 문(해치)이 위로 열린다. 실용성이 뛰어나 도심형 소형차나 경차에 주로 적용된다.

Renault 4 Plein Air ⒸRenault

구겨진 셔츠와 길든 청바지, 손때 묻은 라탄 바구니와 소박한 자동차는 모두 소탈하고 자연스럽다. 버킨은 자신의 삶을 스타일로 연출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살았을 뿐이지만, 그 자체로 스타일이 되었다. 시간이 지난 뒤 사람들은 차보다 그녀를 먼저 떠올리고, 다시 그녀를 통해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을 기억한다. 오늘날 수많은 패션 하우스가 애써 힘을 뺀 ‘에포트리스 시크Effortless Chic’를 이야기하지만, 제인 버킨은 그것을 연출한 적이 없다. 그저 한 사람의 태도를 통해 ‘자연스러움’에 대해서 감각하게 만드는 것이 생활의 궤적이 곧 고유한 스타일이 되는 순간이다.

Jane Birkin, 1968 ⒸImage Republic

미래에서 온 조각품, 시트로엥 DS

카트린 드뇌브Catherine Deneuve가 이 차를 개인적으로 소유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카트린 드뇌브와 시트로엥 DS. 당대 프랑스가 이 우아한 여배우와 혁신적인 자동차를 끊임없이 한 프레임에 밀어 넣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둘의 만남은 프랑스의 미학이 얼마나 시적인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Catherine Deneuve standing next to a Citroën DS car ⒸGiancarlo Botti

DS는 프랑스어로 발음하면 ‘데에스Déesse’, ‘여신Déesse’과 같은 소리가 난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저서 〈신화론〉에서 DS를 두고 “현대의 고딕 성당과도 같은 시대의 창조물”이라 적었다. 1955년 처음 공개된 이 모델은 유려한 공기역학적 차체와 혁신적인 유압 기술로 당대에 미래에서 온 조각품처럼 받아들여졌고, 이는 한 시대가 도달한 정점의 창조물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카트린 드뇌브의 우아함 역시 시류를 좇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기품 있게 앞서갔다. 여신이라는 이름을 지닌 진보적인 기계와 시대가 만들어낸 가장 서늘하고 우아한 여신. 이 둘의 조화는 서로를 장식하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20세기 프랑스 문화가 도달하고자 했던 궁극의 미감을 시각적으로 증명해 냈다.

Citroen DS ⒸDavid Burton, Alamy

‘취향’이라는 꾸며낼 수 없는 선택

Marilyn Monroe and Arthur Miller driving in her 1956 Ford Thunderbird, Newyork city
ⒸEstate of Sam Shaw, Westwood Gallery

영화는 우리에게 허구의 역할을 남기지만, 취향은 프레임 바깥의 진짜 사람이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배우가 일상으로 끌어들인 자동차는 때로 수십 편의 필모그래피보다 더 명료하게 그 사람의 내면을 해설한다. 자동차의 성능은 시간이 지나면 더 뛰어난 기술에 대체되지만, ‘누가 무엇을 탔는지’라는 서사는 쉽게 휘발되지 않는다.

자동차라는 매개체는 예나 지금이나, 오직 한 사람이 주체적으로 운전대를 쥐고 통제하며 기계와 마주하는 독점적인 공간을 제공한다. 시대가 지나도 낡지 않고 오래 남는 것은 자동차 자체가 아니라, 시대의 풍경 속에서 가장 자기다운 속도로 삶을 운전했던 사람들의 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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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디자인은 스스로 태어난다, 버내큘러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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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름다움을 담은 클래식 카, 그리고 그 옆에 선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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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cm에 머무르는 소박한 시선, 오즈 야스지로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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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에서 목걸이로, 파블로 피카소와 팔로마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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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시선이 만든 총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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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도 로시, 도시의 오래된 기억을 모아 그려낸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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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의 귀환, 낯선 것을 추구하는 인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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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시계, 케이스백에 새겨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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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가 발견한 각자의 인생, 자기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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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함의 여행, 조선의 이름 없는 항아리가 바다를 건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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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에 앞서, 소니 그리고 모리타 아키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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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함이라는 가업, 계승되는 천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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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산업 유산의 미학적 환생, 무덱과 폰다지오네 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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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요크의 시각적 유산, 그 궤도를 수놓은 비주얼리스트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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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찰나를 포착했던, 하이엔드 포인트 앤 슛 카메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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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빙 펜에서 더 로우까지, 비워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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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구아다니노가 그린, 에로스와 타나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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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은 빈 방에서 태어난다, 도널드 저드와 릭 루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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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들의 영혼을 깨운 무구한 사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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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스카르파와 아바텔리스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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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실재가 빚어낸 초현실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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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제약, 상상력을 붙잡아두는 창조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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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 움베르토 에코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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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자키 쿄코와 도시적 에로티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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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라는 완벽한 질서, ‘우연 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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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흔적을 지우는 기술, 스프레차투라에 대하여

08

미완성과 우연의 초상, 〈휘슬재킷〉

07

악의 미학을 위한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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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여운, 사물이 살아 있는 시간: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

05

첫 권의 문학: 세계를 여는 방식에 대하여

04

연옥 단계의 클래식

03

호모 콜렉투스 – MoMA가 수집한 사물들

02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시지프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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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오키프와 마이크로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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