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위대함이라는 가업, 계승되는 천재성

위대한 이름이 하나의 가업이 되어 이어져 내려온다면, 그것은 가족에게 견고한 울타리이자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만약 부모가 거장이라면, 후손인 그들에게 주어진 숙명은 그 중력으로부터 멀리 도망쳐 자신만의 빛을 발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여기서 자신만의 지형도를 그린 세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부모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미학적 화두를 새로운 언어로 번역해 내며 스스로 하나의 장르가 된 사람들.

Editorial

위대함이라는 가업, 계승되는 천재성

위대한 이름이 하나의 가업이 되어 이어져 내려온다면, 그것은 가족에게 견고한 울타리이자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만약 부모가 거장이라면, 후손인 그들에게 주어진 숙명은 그 중력으로부터 멀리 도망쳐 자신만의 빛을 발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여기서 자신만의 지형도를 그린 세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부모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미학적 화두를 새로운 언어로 번역해 내며 스스로 하나의 장르가 된 사람들.

Editorial

위대함이라는 가업, 계승되는 천재성

위대한 이름이 하나의 가업이 되어 이어져 내려온다면, 그것은 가족에게 견고한 울타리이자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만약 부모가 거장이라면, 후손인 그들에게 주어진 숙명은 그 중력으로부터 멀리 도망쳐 자신만의 빛을 발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여기서 자신만의 지형도를 그린 세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부모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미학적 화두를 새로운 언어로 번역해 내며 스스로 하나의 장르가 된 사람들.

*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스카르파 부자: 건축물이 하나의 의자가 되기까지

Carlo and Tobia Scarpa Ⓒd’architectures
Tobia Scarpa ⒸJames Mollison

손으로 그려내는 디테일로 추앙받은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와 그의 아들 토비아 스카르파Tobia Scarpa의 관계는, 한 세대의 수공예적 집착이 어떻게 다음 세대의 산업 시스템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지적인 사례다. 카를로 스카르파는 현장에서 가로와 수직의 선에 맞추어 빈틈을 메우는 조각 같은 부속품들로 공간을 빚어냈다. 그가 남긴 스케치만 보더라도 대량생산이라는 현대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오직 그 장소, 그 순간에만 허락되는 것이었다. 그는 건축가이기 이전에 물성을 다스리는 연금술사였고, 그가 남긴 공간들은 범접할 수 없는 성소의 오라를 풍긴다.

아들 토비아 스카르파는 아버지의 집요한 디테일을 물려받았으나, 그것을 실현하는 방식에서는 보다 넓게 동시대와 공존하는 길을 택했다. 아버지가 파고들었던 공예적 완벽주의를 산업 디자인의 영역으로 펼쳐낸 것이다. 카를로가 단 하나의 건물을 완성하기 위해 작은 것들로 가득한 수천 장의 도면을 그리며 평생을 바쳤다면, 토비아는 카시나Cassina, 플로스Flos 같은 브랜드와 협업하며 전 세계에 보급될 수 있는 세련된 가구와 조명을 설계했다.

토비아는 유전자에 새겨진 이탈리아 특유의 우아함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기능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했다. 아버지가 신성한 사원을 지어 미학의 정점을 찍었다면, 아들은 그 사원의 아름다움을 규격화하여 대중의 거실에 놓아두었다. 카를로가 수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영역인 대중과의 직접적인 소통으로의 확장이었다. 건축의 어원은 ‘최고Arkhi’와 ‘기술엄밀히 말하면 기술자를 뜻하는 Tekton’, 당대 최고 기술자들의 영역이자 고정된 권위였다면, 아들이 선택한 길은 가구의 어원인 움직이는 것Mobile, 도구를 통해 대중의 삶과 보조를 맞추는 일이었다.

웨스트우드 모자: 거리의 함성에서 내밀한 실크의 속삭임으로

패션계로 눈을 돌리니 더 극적인 대조가 있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는 후에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매니저가 된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과 함께 1974년 펑크 룩을 판매하는 숍 ‘섹스SEX’를 열었다. 페티시 웨어Fetish Wear와 본디지Bondage 의상을 팔던 그 작은 가게는 당연하게도 펑크 신의 중심지가 되었다. 주류들이 만든 시스템에서 벗어나 원하는 것을 직접 만들어 입는 그녀는 찢어지고 뒤틀린 옷, 안전핀과 정치적 슬로건으로 무장했고, 세상의 부조리에 맞섰다. 그녀에게 패션은 의상을 넘어 하나의 발언이었고 몸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벽보였다. 그녀 스스로도 펑크를 “체제에 쐐기를 박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결핍과 파괴를 아름다움의 언어로 뒤바꾸어, 패션을 치장의 예술에서 의지를 표명하는 선언문처럼 읽히게 만든 선구자다.

Agent Provocateur 2016 F/W ⒸMario Sorrenti

아들 조셉 코레Joseph Corré는 어머니의 저항 정신을 이어 받아, 조용하지만 도발적으로 자신만의 혁명을 준비해왔다. 그의 선언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소재에 쓰였다. 그가 1994년에 세운 아장 프로보카퇴르Agent Provocateur는 란제리를 단순히 숨겨야 할 속옷이 아닌, 여성의 욕망을 표출하는 확성기로 끌어올렸다. 어머니가 낡은 티셔츠를 찢는 방식으로 권위와 맞섰다면, 아들은 고급스러운 실크와 레이스 사이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펼쳐낸다. 요란한 함성 대신 은밀한 속삭임. 거리의 혁명과 같은 밖에서 벌어지는 투쟁과 대비되는 내면의 투쟁,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는 방식으로 고정관념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도구를 그려낸 것이다. 저항의 방향이 바깥을 향했던 어머니와 달리, 아들은 그 시선을 안으로 거두어들여 가장 조용한 곳에서 벌어지는 탐미주의 혁명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코폴라 부녀: 대서사시의 여백에 쓰인 섬세한 시

Francis Ford and Sofia Coppola ⒸAlamy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는 영화를 통해 권력, 인간 사이 힘의 논리, 그것들이 지배했던 한 시대를 다룬 사람이다. 그의 영화 〈대부〉는 마피아 가문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알레고리였다. 코를레오네Corleone 가문의 권력이 인간적인 아버지에서 냉혹한 아들로 계승되는 이야기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우화였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구조를 동시에 비추었고, 그것을 표현하는 스케일과 섬세한 연출의 밀도는 이전의 어떤 감독도 도달하지 못했던 영역이었다. 그는 당시까지만 해도 무시받던 장르 영화로도 한 시대를 성찰하는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고, 일반인이 공감하기 어려운 마피아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인물의 감정, 가족과의 관계와 같이 이야기를 채우는 구성 요소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The Godfather〉 Behind the Scenes ⒸParamount Pictures

너무나 위대한 아버지의 그늘에서 자란 딸 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의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부〉 3편에서 촬영 직전 하차한 배우를 대신해 갑작스럽게 캐스팅되었는데 준비되지 않았던 만큼 비평가들의 혹독한 비판 속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이 그녀를 더욱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었을지 모르겠다. 소피아의 영화는 거대한 시대를 조망하며 커 보이려 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과 사람 사이 생기는 감정의 틈과 공허로 파고든다. 도쿄의 낯선 호텔방에서 느끼는 이방인들의 소외감, 화려한 궁전 안에 갇힌 10대 소녀 마리 앙투아네트의 권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상을 더 넓게 담으려는 아버지의 광각 렌즈를 버리고 인물의 표정과 사소한 디테일에 머무는 망원 렌즈와 마음을 들여다보는 접사 렌즈로 자신만의 세상을 비춘다. 그래서 자신이 그려낸 세계 전체를 담으려 한 야심가였던 아버지와 달리, 그녀의 카메라는 한 사람의 얼굴에 오래 머문다. 세계는 크고 넓지만, 소피아가 바라보는 개개인은 일종의 소우주처럼 자신만의 감정의 나선을 그려낸다. 그녀만의 서정적인 영상 문법, 선곡, 패션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와는 구별되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Sofia Coppola 〈Archive〉 (2023) ⒸMack Books
Scarlett Johansson in 〈Lost in Translation〉 (2003) Directed by Sofia Coppola ⒸFocus Features
〈The Virgin Suicides〉 (1999) Directed by Sofia Coppola ⒸParamount Classics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中 -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소설 〈데미안Demian〉의 구절처럼,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부모라는 세계를 깨뜨려야만 하나의 독립된 예술가로서 태어날 수 있다. 부모가 일궈낸 토양 위에서 저마다 다른, 자신만의 씨앗을 발아시켜 자신만의 길을 보여준 예술가들. 부모의 업적과 그늘을 부정하지 않고,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자신만의 자격을 증명하는 것. 아버지의 조각 같은 건축을 단서 삼아 현대적인 의자를 만들어내고, 어머니의 외향적인 저항 정신을 내면의 관능미로 치환하며, 아버지의 거대한 이야기를 구성하는 톱니바퀴들에 주목하고, 아주 가까이에서 바라본 그들의 감정을 다루는 딸. 이는 단순한 성장을 넘어 기존의 가치관, 자신을 둘러싼 안전한 세계를 스스로 파괴하는 고통을 감내한 후에야 찾아오는 진정한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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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함이라는 가업, 계승되는 천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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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산업 유산의 미학적 환생, 무덱과 폰다지오네 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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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요크의 시각적 유산, 그 궤도를 수놓은 비주얼리스트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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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찰나를 포착했던, 하이엔드 포인트 앤 슛 카메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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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빙 펜에서 더 로우까지, 비워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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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구아다니노가 그린, 에로스와 타나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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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은 빈 방에서 태어난다, 도널드 저드와 릭 루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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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들의 영혼을 깨운 무구한 사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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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스카르파와 아바텔리스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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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실재가 빚어낸 초현실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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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제약, 상상력을 붙잡아두는 창조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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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 움베르토 에코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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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자키 쿄코와 도시적 에로티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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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라는 완벽한 질서, ‘우연 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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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흔적을 지우는 기술, 스프레차투라에 대하여

08

미완성과 우연의 초상, 〈휘슬재킷〉

07

악의 미학을 위한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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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여운, 사물이 살아 있는 시간: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

05

첫 권의 문학: 세계를 여는 방식에 대하여

04

연옥 단계의 클래식

03

호모 콜렉투스 – MoMA가 수집한 사물들

02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시지프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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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오키프와 마이크로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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