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도널드 저드: 마르파의 빛, 100개의 알루미늄 박스
텍사스 사막의 작은 도시 마르파는 저드의 공간 철학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장소다. 버려진 군기지였던 격납고를 개조해 만든 이 공간에서 그는 사물을 어디에 어떻게 두는지가 곧 그 사물의 본질을 결정한다는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격납고 안에는 알루미늄 박스 백 개가 길게 놓여 있다.


텍사스 사막의 작은 도시 마르파는 도널드 저드Donald Judd의 공간 철학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장소다. 버려진 군기지였던 격납고를 개조해 만든 이 공간에서 그는 사물을 어디에 어떻게 두는지가 곧 그 사물의 본질을 결정한다는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격납고 안에는 알루미늄 박스 백 개가 길게 놓여 있다


저드가 가장 공을 들인 건 다름 아닌 창문인데 긴 벽을 따라 설치한 십자격자 창문을 통해 사막의 빛이 하루 동안 일정한 속도로 공간을 지나간다. 아침에는 차갑고, 낮에는 뜨겁고, 저녁에는 붉은 노을빛으로 같은 박스는 하루에 세 번 다른 존재가 된다. 저드는 단순히 사물을 배치한 것이 아니라 빛과 시간의 흐름을 설계하여 공간 전체를 하나의 살아있는 현상으로 만들었다.




뉴욕 스프링 스트리트 101번지의 건물에서도 같은 개념이 보인다. 1968년에 매입한 다섯 층짜리 이 건물은 그의 집이자 작업실로 저드는 나무 바닥과 맨 벽을 드러내고 가구는 벽에 붙지 않고 공간의 중심에 놓았다. 큰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페인트를 칠하지 않은 합판의 결을 그대로 비춘다. 가공되지 않은 나무, 알루미늄, 콘크리트. 나뭇결의 방향이 보이고 콘크리트 바닥 위의 빛이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저드는 가구를 놓을 때마다 그 사물이 차지하는 공간의 밀도를 정했다. 그에게 배치란 물건을 두는 행위가 아니라 사물이 지배할 영역의 경계 고려하는 것이었다. 불필요한 것이 없으면 남은 것에 집중할 수 있기에 그것의 존재감은 더욱 커진다. 무언가 허투루 놓인 것이 없다는 상투적인 표현처럼, 꼭 거기 있어야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구들 속에서 저드는 몰입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을 것 같다. 나무와 금속처럼 가식 없는 재료가 본래의 결을 숨기지 않는 저드의 방에서는 잡념이 맺힐 곳이 없다.

릭 루빈: 벽에 아무것도 없을 때 귀가 열린다


릭 루빈Rick Rubin의 작업실은 말리부 해안의 언덕 위에 있다. ‘샹그릴라Shangri-La’라는 이름의 이 공간은 1970년대 더 밴드와 밥 딜런이 사용하던 유서 깊은 녹음실이었다. 본래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영원한 젊음이 약속된 티베트의 가상 이상향을 뜻하는 이름이지만, 루빈이 재정의한 유토피아는 낙원이 아닌 고요한 수도원처럼 보인다.


2011년 이곳을 인수한 루빈은 가장 먼저 오직 흰 벽과 커다란 창문만을 남겼다. 시선이 머무는 곳에 아무것도 없으면 무언가가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창조성에 관한 책을 쓸 만큼 오래 이 주제를 생각해온 루빈은 최소한의 자극 속에서 하나에 집중할 때 비로소 무언가가 나온다고 믿는다.




루빈은 음악을 만든다기보다 이미 있는 소리를 찾아내는 사람에 가깝다. 조니 캐시, 메탈리카, 아델. 그가 작업한 음악가들의 결은 전부 다른데 그럴 수 있었던 건 자기 색을 덧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성향처럼 샹그릴라의 창은 늘 열려 있다고한다. 바깥 공기와 파도 소리가 실내로 들어오고 루빈은 맨발로 그 사이를 걸으며 작업한다. 복잡한 장비와 가전은 시야 밖으로 숨겨져있다. 나중에 쓸 것 같은 물건을 보관하는 행위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쌓아두는 일과 다르지 않다. 루빈은 그것을 걷어내어 물리적으로 가벼워진 공간을 만들고 덩달아 정신도 가볍고 자유롭게 두었다.



두 거장의 공간을 나란히 놓으면 닮은 점이 먼저 보인다. 둘 다 가능한 모두 뺐다. 하지만 비우는 방식이 다르다. 저드는 사물의 배치가 만드는 긴장을 조율했고 창문과 빛의 관계, 가구와 바닥의 비례처럼 모든 것이 계산된 위치에 있다. 그 정밀함이 공간을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상태로 만든 반면 루빈의 비움에는 여백이 있어 가능성이 활짝 열려있다. 그러나 두 공간이 주는 것은 같다. 하나의 감각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 저드의 공간에는 창문으로 들어온 빛을 한참 보게 되고 루빈의 샹그릴라에서는 파도 소리를 듣게 된다. 저드는 예술과 건축과 삶이 고립되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썼고 루빈은 가장 적은 자극 안에서 본질적인 것 하나만 남길 때 비로소 무언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공간을 다듬는 일은 결국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치울지 결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남겨진 것은 곧 그 공간에 사는 사람의 감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