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루카 구아다니노가 그린, 에로스와 타나토스

왜인지 루카 구아다니노의 세계에서 사랑은 종종 대가를 치르며 그 대가는 상실이거나 죽음이다. ⟨아이 엠 러브⟩와 ⟨본즈 앤 올⟩은 사랑이 향하는 방향이 서로 정반대인 두 편의 영화다. 어떤 것이 해피엔딩이고 어떤 것이 비극인지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남은, 우리 마음을 흔드는 잔상이 정의내릴 것이다. 그 잔상이 그려낸 빛의 온도와 미장센의 언어를 하나씩 짚어보려 한다.

Editorial

루카 구아다니노가 그린, 에로스와 타나토스

왜인지 루카 구아다니노의 세계에서 사랑은 종종 대가를 치르며 그 대가는 상실이거나 죽음이다. ⟨아이 엠 러브⟩와 ⟨본즈 앤 올⟩은 사랑이 향하는 방향이 서로 정반대인 두 편의 영화다. 어떤 것이 해피엔딩이고 어떤 것이 비극인지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남은, 우리 마음을 흔드는 잔상이 정의내릴 것이다. 그 잔상이 그려낸 빛의 온도와 미장센의 언어를 하나씩 짚어보려 한다.

Editorial

루카 구아다니노가 그린, 에로스와 타나토스

왜인지 루카 구아다니노의 세계에서 사랑은 종종 대가를 치르며 그 대가는 상실이거나 죽음이다. ⟨아이 엠 러브⟩와 ⟨본즈 앤 올⟩은 사랑이 향하는 방향이 서로 정반대인 두 편의 영화다. 어떤 것이 해피엔딩이고 어떤 것이 비극인지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남은, 우리 마음을 흔드는 잔상이 정의내릴 것이다. 그 잔상이 그려낸 빛의 온도와 미장센의 언어를 하나씩 짚어보려 한다.

*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에로스와 타나토스: 결합과 해체 사이의 미장센

Director Luca Guadagnino on the set of “Bones and All,” © 2022 Metro-Goldwyn-Mayer Pictures Inc.

이탈리아 남부 팔레르모에서 태어난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는 알제리계 어머니와 이탈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은 에티오피아에서 보냈다. 여러 경계를 오간 사람 특유의 감각과 자유가 배어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움직이는 두 가지 충동을 에로스Eros와 타나토스Thanatos로 구분했다. 에로스는 결합하고 연결되려는 힘이고 타나토스는 해체하고 되돌아가려는 힘이다. 사랑만이 아니라 창조와 파괴, 소유와 상실, 삶과 죽음 전체를 관통하는 두 흐름. 구아다니노 영화에서 사랑은 언제나 이 두 충동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이 엠 러브⟩와 ⟨본즈 앤 올⟩은 그 방향이 서로 반대인 두 편의 영화다. 한쪽에서는 에로스가 세계를 부수며 타나토스를 불러들이고 다른 쪽에서는 타나토스가 깔린 세계 위에서 에로스가 완성된다. 감독은 빛과 카메라의 언어로 두 충동을 아름다운 미장센을 통해 그려냈다.

⟨아이 엠 러브: 다시 살아난 에로스, 탐닉의 빛

⟨아이 엠 러브 I Am Love⟩(2009) © Mikado Film

⟨아이 엠 러브⟩의 초반부는 완벽하게 차려진 저택 안에서 가구처럼 자리를 지키는 한 여자를 따라간다.

⟨아이 엠 러브 I Am Love⟩(2009) © Mikado Film

많은 이들이 오고가는 레키 가문의 저택.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은 집 안을 따스하게 퍼지지 않고 특정 영역만 정확히 비춘다. 식탁은 빈틈없이 채워져 있고 인물들은 프레임 안에서 정해진 자리를 지킨다. 구아다니노와 촬영감독 요릭 르 소Yorick Le Saux가 설계한 색 온도는 의도적으로 낮다. 크림색과 상아빛이 주조를 이루는 화면 안에서 틸다 스윈튼Tilda Swinton의 얼굴만이 무언가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매끄럽게 억눌려 있다.

⟨아이 엠 러브 I Am Love⟩(2009) © Mikado Film Photograph by Pierpaolo Ferrari

르 소는 훗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 엠 러브⟩ 안에서도 구아다니노는
넓은 시각적 스펙트럼을 오간다.
레키 가문 저택의 차가운 부유함에서부터
틸다 스윈튼의 감각이 뜨겁게 깨어나는
시골의 따뜻한 관능성까지.
Even within I Am Love,
he straddles a wide visual range —
from the chilly wealth of the Recchi household to the warm sensuality
of the countryside where Tilda Swinton
experiences her passionate reawakening.
– <Variety> 요릭 르 소 인터뷰 中 –

⟨아이 엠 러브 I Am Love⟩(2009) © Mikado Film

⟨아이 엠 러브⟩를 떠올리면 스치는 이미지들은 엠마가 안토니오의 요리를 입에 넣는 순간 이후부터다. 구아다니노는 그 장면을 클로즈업으로 포착하는데 카메라는 엠마의 얼굴이 아니라 빛을 받은 접시를 먼저 비춘다. 이후 리구리아 해안에서 찍힌 장면들은 따스하고 채도가 높고 빛이 인물들 위에 내리쬔다.

⟨아이 엠 러브 I Am Love⟩(2009) © Mikado Film

풀밭의 초록과 기울어진 빛의 각도, 핸드헬드로 흔들리는 화면. 저택의 수직적이고 고정된 앵글과 달리 야외 장면에서 카메라는 인물을 따라가고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간다. 예고 없이 찾아온 사랑이 한 사람의 인생을 흔들듯 카메라도 함께 흔들린다. 르 소는 이 영화에서 실내와 야외의 색 온도를 의도적으로 분리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그 분리가 서사의 분리이기도 하다. 무채색의 견고한 줄 알았던 세계가 원색의 생동감을 회복하는 과정이고 계기는 사랑이다. 구아다니노의 영화에서 에로스는 대사가 아니라 빛과 카메라로 말한다. 사랑에 빠지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그렇게 생생하게.

⟨아이 엠 러브 I Am Love⟩(2009) © Mikado Film

⟨본즈 앤 올⟩: 타나토스가 풍경의 색인 영화

⟨본즈 앤 올 Bones and All⟩(2022), © 2022 Metro-Goldwyn-Mayer Pictures Inc.

⟨아이 엠 러브⟩가 채도를 억누른 세계에서 시작했다면 ⟨본즈 앤 올⟩은 처음부터 빛 자체가 다르다. 1980년대 미국 중서부의 겨울 대평원을 찍은 이 영화에서 구아다니노와 촬영감독 아르세니 하차투리안Arseni Khachaturan은 35mm 필름으로 자연광만을 담았다.

하늘은 항상 납빛이고 끊임없이 달리는 도로 위에서 매런은 자신이 왜 이런 본능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알지 못한 채 도망치듯 이동한다. 버려진 건물, 녹슨 간판, 아무도 없는 주유소. 화면 안의 모든 것이 오래전에 한 번 죽은 것처럼 보인다. ⟨아이 엠 러브⟩가 에로스의 침입으로 채도를 회복하는 영화라면 ⟨본즈 앤 올⟩은 처음부터 타나토스가 풍경의 색인 영화다.

⟨본즈 앤 올 Bones and All⟩(2022), © 2022 Metro-Goldwyn-Mayer Pictures Inc.

리(티모시 샬라메)가 나타난 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들에서는 다른 빛이 들어온다. 구아다니노는 두 사람을 같은 프레임 안에 넣고 같은 빛 아래 둔다. 혼자일 때 납빛 형광등 아래 납작하게 눌려 있던 매런의 얼굴이 리와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입체감을 되찾는다. 서로의 어깨와 팔꿈치는 더이상 어둠 속에 있지 않고 이제는 함께 그림자를 만든다.

⟨본즈 앤 올 Bones and All⟩(2022), © 2022 Metro-Goldwyn-Mayer Pictures Inc.

하차투리안은 수천 마일의 로케이션 스카우트 과정에서 “영화나 사진에서 한 번도 담기지 않은 장소들이 많았다”고 말했는데 그 미지의 풍경들이 두 사람의 이동 위에 겹쳐진다. 바랜 색의 땅 위에서 함께 있는 두 사람. 둘 다 타나토스 안에서 태어났고 그것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 공통점은 서로를 알아보게 하지만 결핍은 서로를 놓지 못하게 한다. 자신의 본능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사람, 같은 어둠을 가졌기에 오히려 함께 있을 수 있는 안도감이 에로스의 시작이 된다. 

⟨본즈 앤 올 Bones and All⟩(2022), © 2022 Metro-Goldwyn-Mayer Pictures Inc.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리는 매런에게 자신을 먹어달라고 한다. 구아다니노는 이 장면을 어둡게 찍지 않았다. 모든 장면이 다 나오지는 않는다. 그들이 누운 방에는 저녁 무렵의 빛이 창문 너머로 비스듬히 들어오고 화면은 주황빛이다. 두 사람의 얼굴이 따듯한 빛을 함께 받는다. 죽음을 삼키는 것이 사랑의 완성이 되는 순간을 그 소란스럽게 찍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와 서서히 바뀌는 빛. 죽음에서 시작된 사랑이 다시 죽음으로 완성되는 서사는 조용하고 강렬히 남는다.

⟨본즈 앤 올 Bones and All⟩(2022), © 2022 Metro-Goldwyn-Mayer Pictures Inc.
⟨본즈 앤 올 Bones and All⟩(2022), © 2022 Metro-Goldwyn-Mayer Pictures Inc.
⟨본즈 앤 올 Bones and All⟩(2022), © 2022 Metro-Goldwyn-Mayer Pictures Inc.

구아다니노의 세계에서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타나토스는 에로스가 낡은 세계를 탈출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이며, 에로스는 타나토스가 유일하게 구원받을 수 있는 형태다. 사랑은 변화를 일으키고 변화는 언제나 무언가의 끝을 동반한다. 에로스가 결합하려는 힘이라면 결합은 필연적으로 이전의 상태를 잃는 것을 전제한다.

누군가와 하나가 되려면 혼자였던 자신을 일부 잃어야 하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려면 익숙했던 세계를 버려야 한다. 엠마는 사랑을 얻는 대신 아들을 잃고 가문을 잃었다. 매런은 리를 얻는 대신 그를 떠나보내야 했다. 사랑이 깊을수록 잃는 것도 크다. 그래서 사랑이 시작되면 익숙했던 세계가 무너지고 그 상실을 받아들인 자리에서 사랑은 완성된다. ‘완성’이라는 것이 해피엔딩인지, 비극인지는 각자가 그리는 사랑의 형태에 달려 있을 것이다.

《본즈 앤 올 Bones and All》(2022), © 2022 Metro-Goldwyn-Mayer Pictures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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