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윤이

editor's note
모스의 물건들은 함께 놓였을 때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컵과 노트, 에코백은 재료도 쓰임도 다르지만, 색과 패턴이 서로 어울리며 같은 브랜드의 물건임을 드러낸다. 석윤이가 책을 만들며 오래 연습한 일이기도 하다. 한 권의 개성을 살리고 여러 권의 관계를 정하는 것. 이제 그 판단은 종이와 화면, 도시의 보행로를 오가며 이루어진다. 읽는 화면에서는 글자 사이의 간격을, 거리에서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 구현되는 색의 차이를 살핀다. 그래픽이 실제로 놓일 자리를 이해하는 일이 표현의 범위를 넓혀왔다.
자신의 브랜드를 운영하면서는 살펴야 할 것이 더 많아졌다. 마음에 드는 제품을 만드는 데서 시작한 일은 생산 수량을 정하고 재고를 관리하는 일로, 구매자의 질문을 듣고 물건을 포장해 건네는 일로 이어졌다. 오래 디자인한 사람에게도 처음 배우는 일은 계속 생긴다. 석윤이는 그 어려움을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현장에서 알게 된 것들을 다음 제품과 운영에 반영하며 모스의 모습을 구체화하고 있다. 보는 순간 느끼는 즐거움을, 실제로 사고 쓰는 경험까지 이어가는 것. 지금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책임지고 있는 디자인의 범위다.
1. 그래픽이 놓일 자리를 생각하다

저자의 기존 JOH 작업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적인 인상과 따뜻한 분위기를 함께 담아냈다.
디자인 콘셉트와 방향은 온전히 석윤이 대표가 정했으며, 책 전체를 관통하는 오렌지 컬러는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저자가 직접 선택했다고. Ⓒkiosk

열린책들 재직 당시 미메시스 뮤지엄에서 열린 전시를 통해 손정민 작가를 알게 됐고, 이후에도 전시를 찾아가며 팬으로서 인연을 이어왔다.
작가의 의뢰로 마침내 함께 작업한 도록은 두 사람이 그리던 방향이 맞닿아 빠르게 완성됐다. Ⓒkiosk
— 독립한 뒤에도 북 디자인을 꾸준히 이어왔어요. 출판사 안에서 책을 만들 때와 지금,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의뢰를 받는 단계부터 달라요. 주로 1인 출판사나 규모가 작은 출판사와 일하는데,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에 함께 정해야 할 것이 많거든요.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지 이야기를 듣고, 판형과 무게감, 원고의 분량과 장의 구성까지 살펴요. 서점 매대에 놓였을 때 어떤 인상을 줄지도 함께 이야기하고요.
특히 첫 책을 내는 출판사는 그 책을 통해 앞으로의 정체성까지 정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디자인 작업이라기보다 컨설팅에 가까울 때가 많아요. 함께 이야기한 방향에 맞춰 원고가 정리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시작하죠. 이후에는 인쇄소를 찾고 제작을 확인하고 납품하는 과정까지 함께해요. 클라이언트의 고민을 듣고 방향을 찾는 데 디자인 실무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들기도 해요. 그만큼 한 권이 완성됐을 때의 보람도 크고요.


— ‘어떻게 읽히는가’를 고민한 경험은 디지털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롱블랙의 웹사이트 디자인은 처음에 작은 자문으로 시작했다고요.
모스그래픽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의뢰를 받았어요. 가독성 개선을 위해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조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개발까지 이어졌죠. 새롭게 시작하는 미디어가 선택하기에는 과감할 수 있는 디자인이었는데, 제 의도가 거의 그대로 구현됐어요. 롱블랙 측에서 더 참신하고 감각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 덕분에 저도 적극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고요. 공개된 뒤 반응도 좋았고, 또 새로운 의뢰로 이어지기도 했죠.
— 인쇄를 마치면 쉽게 바꿀 수 없는 책과 달리, 웹사이트는 공개 후에도 계속 손볼 수 있잖아요. 새로운 물성을 다루며 발견한 즐거움은 무엇이었나요?
계속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았어요. 요청이나 피드백을 빠르게 반영하고, 상황과 콘셉트에 따라 바꿀 수 있으니까요. 디지털 디자인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보통은 저희가 레이아웃을 디자인하고 클라이언트가 개발자와 소통하며 구현해요. 다만 공개하기 직전에는 화면에 실제로 구현됐을 때도 의도한 모습으로 읽히는지 살펴야 하기 때문에, 저희도 개발자와 함께 여백이나 자간, 행간 같은 부분을 하나씩 조정하고요.


춘천에서 마주한 풍경을 채도 높은 따뜻한 색으로 옮겨, 188m 길이의 원형 보행 육교에 펼쳐냈다.
도시를 대표하는 구체적인 형상 대신 정갈한 분위기를 추상적인 패턴으로 풀어내고,
어느 하나 도드라지지 않도록 색과 형태를 조율해 주변의 자연 풍경과 어우러지게 했다. ⒸMOHS
— 올해 춘천의 ‘소양아트서클’에서는 그래픽이 사람들의 보행로가 됐습니다. 손에 들거나 화면으로 보던 디자인을 도시의 규모로 옮기는 일은 어땠나요?
춘천시와 함께 육교와 주변 거리에 패턴을 적용한 프로젝트예요. 그래픽 디자이너가 그 정도 규모의 공공시설물에 참여할 기회는 흔하지 않아서 꼭 해보고 싶었죠. 특히 실제로 구현하는 과정에 신경을 많이 썼고요. 아스팔트에는 패턴을 출력한 시트를 붙이고, 콘크리트에는 페인트로 색을 칠했어요. 재료가 다르니 같은 색도 다르게 보일 수 있잖아요. 제가 의도한 색으로 보이는지 현장에서 확인하면서 맞춰야 했죠.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저희가 만든 그래픽이 공공 공간에 놓였다는 점이 뿌듯했어요. 사람들이 그곳을 매일 사용한다는 사실도 좋았고요.
책에서는 종이와 잉크를 확인했고, 화면에서는 글자 사이의 간격을 다시 조정했다.
거리에 그래픽을 옮길 때도 석윤이는 실제 재료 위에 놓인 색을 살폈다.
작업의 규모가 커져도 마지막에는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차이가 남는다.
그의 그래픽은 그 차이를 맞추는 과정을 거쳐 사람들의 일상에 들어선다.

웹과 인쇄물, 영상 간의 조화를 생각하며 디자인했다. ⒸMOHS
— 출판사부터 공공기관까지, 함께 일하는 상대도 다양해졌습니다. 각자의 요구를 이해하고 작업의 방향을 정할 때는 무엇을 가장 먼저 살피나요?
클라이언트가 이미 강한 정체성을 갖고 있을수록 고민이 많아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중 실제로 할 수 있는 것과 어려운 것을 빨리 판단해야 하죠. 어떤 프로젝트든 시간은 넉넉하지 않은데 결정할 것은 많으니까요. 필요한 내용을 먼저 확인하고, 그에 맞게 일을 진행하는 순서를 정하려고 해요.

— 대표님이 디자인 프로젝트에 마침표를 찍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저는 조화로움을 중요하게 봐요. 많은 분이 모스그래픽의 작업에서 화려한 색과 패턴을 먼저 보시지만, 각각의 요소가 함께 있을 때 어떤지도 그만큼 중요하거든요. 개별 그래픽의 완성도도 높아야 하고, 그것들이 한데 모였을 때 서로 어색하지 않아야 해요. 모든 요소가 제자리에 있으면 색의 톤도 편안하게 느껴지고,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생겨요. 모스의 컵과 에코백, 노트를 함께 놓았을 때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처럼요. 재료와 용도가 달라도 그런 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에게 작업을 맡기는 분들도 그 부분을 기대하시는 것 같고요.
2. 모스를 만드는 일, 모스를 건네는 일
— 여러 행사에 참여하면서 고객들을 직접 만나기 시작했죠. 이러한 과정에서 디자인을 보는 기준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여러 브랜드가 함께 있는 현장에 가보면, 모스를 분명하게 기억하게 할 제품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요. 큰 부담 없이 살 수 있으면서도 브랜드의 특징이 잘 드러나야 하죠. 학생들이 많이 사는 1만 원 미만의 노트와 엽서, 스티커 같은 제품이 그 역할을 해요. 반대로 가격이 조금 높아도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기꺼이 구매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을 위한 제품도 필요하고요. 사무실에서는 제가 만들고 싶은 것을 생각했다면, 현장에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제품을 찾는지 보게 돼요. 제품군을 구성할 때도 그 차이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것 같아요.

— 언젠가 모스만의 매장에서 고객을 맞이할 날도 기대되는데요. 현장에서 고객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은 어떤 의미로 쌓이고 있나요?
직접 대면하고 만나는 자리가 저한테는 새로움의 연속이었어요. 문의를 듣고 답하는 것부터 결제하고 포장해서 건네는 순간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면 고객들이 모스를 더 좋게 기억해주시더라고요. 사무실에서 디자인만 할 때는 알기 어려웠던 서비스의 영역인 거겠죠. 언젠가는 작은 오프라인 숍을 열고 싶어요. 모스가 어떤 브랜드인지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거든요. 운영이 조금 더 안정되면 꼭 해보려고요.
한 장의 엽서는 누군가가 모스를 처음 만나는 물건이 된다.
그 물건을 고르는 동안 나눈 대화와 포장해 건네는 방식도 브랜드의 인상에 남는다.
석윤이는 제품을 직접 판매하며, 디자인이 사람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배웠다.
모스가 앞으로 갖고 싶은 작은 숍에는 그 경험이 담겨 있다.

— 열린책들에서는 디자인팀을 이끌었고, 지금은 스튜디오와 브랜드 전체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대표가 된 뒤 가장 크게 실감한 차이는 무엇인가요?
회사에 있을 때도 제 디자인을 하면서 후배들의 작업을 봐야 했고, 임원들에게 진행 상황을 보고해야 했어요. 그때는 제가 맡은 역할이 정말 많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독립하고 보니 그동안은 쉬운 일을 했구나 싶더라고요.(웃음) 물론 제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일을 집중해서 할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이에요. 하지만 회사를 운영하려면 전에 하지 않았던 일을 해야하고, 시간이 갈수록 필요한 역할도 늘어나고요. 요즘은 스튜디오의 시스템을 어떻게 정비하고 보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기인 것 같고요.

— 특히 최근 모스의 유통처가 늘어나면서는 제품을 만든 이후의 일이 더 중요해졌겠네요. ‘MOMA 디자인 스토어 재팬’과 런던의 문구 셀렉트 숍 ‘Present&Correct’ 등등 국내외 여러 매장에 뻗어가고 있잖아요. 이 시점에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어디인가요?
처음에는 제가 만들고 싶은 물건을 만들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협업 제안이 들어오는 것만으로 기뻤어요. 인벤타리오를 계기로 더 많이 알려지면서 백화점 팝업도 하고 해외 편집숍에도 들어갔죠. 감사한 일이지만, 그만큼 수량과 재고를 관리하는 일이 중요해졌어요. 품질도 계속 확인해야 하고요. 이미 한 번 출시한 제품이라도 다시 생산할 때 점검을 조금만 소홀히 하면 불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 경험을 통해 배웠거든요. 이럴 때마다 브랜드를 운영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실감하죠. 그래서 지금은 그 무엇보다 모스의 운영과 관리를 더 체계적으로 만드는 데 집중하고 싶어요.

ⒸNext Design School
— 그런 경험을 대학생들에게도 나누고 계시죠. 이제 막 디자인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나요?
종종 교수님들을 만나 이야기해보면 학생들이 실무를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직접 해볼 기회가 많지 않으니 당연하겠죠. 요즘에는 자기 굿즈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하는 학생들도 많아서, 실제로 운영할 때 어떤 일이 필요한지 들려달라는 요청을 받아요. 저는 기획하는 능력을 기르고, 여러 영역의 디자인을 두루 경험해보라고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되라는 뜻은 아니고요. 졸업한 뒤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니 가능한 한 많이 알아두면 좋다고 이야기하죠. 강의를 하다 보면 제가 어렵게 겪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꼭 해보고 싶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돼요. 그런 경험을 나누는 것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이 기쁨으로 돌아오더라고요.
이미 출시한 제품도 처음처럼 확인해야 한다.
석윤이가 운영에서 배우는 것은, 좋은 결과를 거듭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수고다.
모스의 다음 제품을 구상하는 일과 지금 있는 제품의 품질을 지키는 일이 그의 하루에 함께 놓인다.
3. 좋아하는 것을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

— 새로 배워야 할 일이 많아질수록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감각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겠어요. 요즘은 어떤 방식으로 눈을 환기하나요?
좋은 작업을 많이 보려고 해요. 특히 완성도가 높은 디자인 제품을 살펴보면서 자극을 받아요. 그렇다고 그 스타일을 제 작업에 그대로 가져오려는 것은 아니고요. 다른 디자이너가 어떤 시도를 했는지 보면서 지적인 자극을 얻는 거죠. 한편으로는 제가 원래 잘하던 것에 집중하려고 해요. 새롭고 유행하는 것을 저까지 모두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좋은 작업을 보는 일과 제 작업의 방향을 정하는 일은 구분하려고 해요.
— 오래 지켜보는 디자이너의 작업에는 대표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도 담겨 있을 것 같습니다. 꾸준히 시선이 가는 인물이 있나요?


책과 포스터를 중심으로 작업하며, 종이와 잉크의 물성을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로 다룬다.
대표 클라이언트로는 퐁피두센터, 에르메스 등이 있다.
(오) 프랑스 클레르몽페랑에 위치한 공연 극장 ‘라 코메디 드 클레르몽’을 위한 포스터 디자인
프랑스 그래픽 디자이너 ‘파네트 멜리엘Fanette Mellier’(@Fanette Mellier)을 오래 지켜봤어요. 책을 하나의 오브제로 바라보고, 색이 어떻게 인쇄되는지 탐구하는 점이 제 관심과 맞닿아 있거든요. 자유롭게 디자인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는 모습에서도 영감을 받아요.


(오) 핀란드 하이엔드 향수 브랜드 ‘Aplomb’의 브랜드 시각 아이덴티티와 패키지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다.
ⒸStudio Lotta Nieminen
‘스튜디오 로타 니에미넨Studio Lotta Nieminen’(@lottanieminen)의 작업을 인상 깊게 봤어요. 해외 코스메틱 브랜드 가운데 디자인이 좋은 곳들을 찾아보다가, 이 스튜디오가 맡은 프로젝트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죠. 다루는 브랜드는 다양한데 각각의 정체성이 분명하고,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디자인하더라고요. 그런 점을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 작업을 보는 일에서 잠시 벗어났을 때, 예상하지 못한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나요?
여름 휴가 때 가족들과 다녀온 호주 여행이요. 거의 10년 만에 떠난 장거리 여행이었거든요. 어쩌면 올해 제가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할 정도니까요.(웃음) 호바트에서 15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면 작고 아담한 ‘브루니 섬Bruny Island’이 나타나는데, 섬에서 내려다보이는 잔잔한 바다가 참 좋았어요. 특히 길가의 냉장고를 열면 빵을 먹을 수 있도록 해놓은 위트있던 베이커리도 기억나요. 오전 10시에 빵이 채워져서 오가는 사람 누구나 구매할 수 있게 해둔 게 특이한 경험이었어요. 저는 좋은 디자인을 보려면 도시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자연 속에서 편안함을 많이 느꼈어요. 바쁘게 일하던 사무실을 벗어나 있으니 특별한 것이 없어도 자연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요즘 대표님의 시선을 가장 오래 붙잡아둔 브랜드와 공간을 하나씩 들려주세요.
레이어드 LAYERED
스웨덴의 러그 브랜드예요. 스톡홀름에서 연 전시를 보고 처음 알게 됐어요. 그래픽 디자이너와 사진가, 아티스트 등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해 컬렉션을 선보이는 점이 흥미롭죠. 제품도 좋지만 웹사이트의 간결하고 정돈된 레이아웃도 인상적이에요. 브랜드를 보여주는 방식까지 함께 보고 있어요.
태즈메이니아 모나 뮤지엄 Mona Museum
호주 여행 중 방문한 미술관이에요. 밖에서 봤을 때와 안으로 들어갔을 때의 느낌이 많이 달라서 기억에 남아요. 지하로 내려가면 복도와 계단, 터널과 전시실이 여러 층에 걸쳐 복잡하게 이어지거든요. 익숙한 미술관과는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책을 통해 색을 배운 사람의 시선은 지금도 책에 머물고, 때로는 러그와 가구로 향한다.
석윤이는 새로운 작업을 살피면서 자신이 오래 좋아해온 것을 함께 확인한다.
다른 이의 표현에서 자극을 얻되, 자신의 작업에 필요한 것은 스스로 판단하는 일.
그 선택이 쌓일수록 모스가 보여줄 세계도 조금씩 구체적인 모습을 갖춘다.

— 지금까지는 주로 타인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왔습니다. 앞으로 모스의 이름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것도 있나요?
저희가 만든 이미지로 채운 아트북을 만들고 싶어요. 글보다 이미지가 중심이 되는 책이요. 평소 많이 다루는 종이 외에 도자기나 가방 같은 다른 소재와 품목도 시도해보고 싶고요. 올해 강의와 콘퍼런스에 참여하면서 평소 만나기 어려웠던 분야의 디자이너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분들과 협업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죠. 생각한 것을 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겠지만, 한두 가지라도 실제로 해보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올해 하반기 석윤이와 모스그래픽이 이어가고 있는 작업을 들려주세요.
10월에 공개를 준비하는 프로젝트가 여럿 있어요. 국립현대미술관과는 에코백과 노트 등을 개발했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투썸플레이스와 함께 한글날을 기념하는 상품도 준비하고 있어요. 서울디자인재단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오뚜기와도 브랜드 상품을 만들고 있고요. 초기에는 한두 제품에 들어갈 그래픽을 디자인하는 일이 많았다면, 지금은 클라이언트와 제품군을 함께 구성하고 제작 과정 전반을 맡는 경우가 늘었어요. 고민과 걱정도 있지만 저희를 그만큼 신뢰해주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저희도 더 배울 수 있는 기회고요. 12월 ‘서울라이트 DDP 겨울’을 위한 미디어 파사드 작업도 준비하고 있어요. DDP 외관에 저희 그래픽을 선보일 계획이에요. 책과 작은 물건에 놓였던 디자인이 그곳에서는 어떻게 보일지 기대하며 작업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