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가장 서늘한 색 블루, 〈서스페리아〉와 〈포제션〉으로 바라본 청회색 베를린

밤이 되어도 아스팔트의 열기가 식지 않는 계절이 오면 오히려 차가운 영화를 꺼내게 된다. 젖은 콘크리트와 흐린 유리창, 형광등 아래 푸르게 식은 피부가 등장하는 영화들이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2018)와 안드레이 줄랍스키의 〈포제션〉(1981)은 모두 분단 시기의 베를린이 배경으로, 두 영화는 고전적인 호러의 선명한 빨강 대신 회색에 가까운 청색을 화면 깊숙이 깔아둔다. 욕망과 죄책감이 붉은 상처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지점을 넘어섰을 때 남는 색. 두 편의 영화에 오래 머무는 푸른빛을 따라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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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서늘한 색 블루, 〈서스페리아〉와 〈포제션〉으로 바라본 청회색 베를린

밤이 되어도 아스팔트의 열기가 식지 않는 계절이 오면 오히려 차가운 영화를 꺼내게 된다. 젖은 콘크리트와 흐린 유리창, 형광등 아래 푸르게 식은 피부가 등장하는 영화들이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2018)와 안드레이 줄랍스키의 〈포제션〉(1981)은 모두 분단 시기의 베를린이 배경으로, 두 영화는 고전적인 호러의 선명한 빨강 대신 회색에 가까운 청색을 화면 깊숙이 깔아둔다. 욕망과 죄책감이 붉은 상처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지점을 넘어섰을 때 남는 색. 두 편의 영화에 오래 머무는 푸른빛을 따라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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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서늘한 색 블루, 〈서스페리아〉와 〈포제션〉으로 바라본 청회색 베를린

밤이 되어도 아스팔트의 열기가 식지 않는 계절이 오면 오히려 차가운 영화를 꺼내게 된다. 젖은 콘크리트와 흐린 유리창, 형광등 아래 푸르게 식은 피부가 등장하는 영화들이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2018)와 안드레이 줄랍스키의 〈포제션〉(1981)은 모두 분단 시기의 베를린이 배경으로, 두 영화는 고전적인 호러의 선명한 빨강 대신 회색에 가까운 청색을 화면 깊숙이 깔아둔다. 욕망과 죄책감이 붉은 상처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지점을 넘어섰을 때 남는 색. 두 편의 영화에 오래 머무는 푸른빛을 따라가보았다.

*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열대야와 공포의 계절

〈Possession〉(1981) ⒸDeep Fried Movies

여름밤의 공포 영화는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체온을 낮춘다. 어두운 복도와 갑작스러운 소리,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잠시 더위를 밀어낸다. 그러나 잘 만든 호러는 놀라게 하는 순간보다 그 이후에 오래 남아 자꾸만 우리를 점점 더 낯선 곳으로 끌어들인다. 올여름 다시 꺼낸 두 편은 1977년 ‘다리오 아르젠토Dario Argento’의 고전을 리메이크한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의 〈서스페리아Suspiria〉와 ‘안제이 줄랍스키Andrzej Żuławski’의 〈포제션Possession〉이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시대에 만들어졌지만 각각 1977년과 1981년의 서베를린을 바라본다. 

원색의 공포가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

두 영화는 베를린이라는 장소를 제외하면 거의 닮지 않았다. 〈서스페리아〉는 지알로*를 다시 해석한 무용단을 지배하는 마녀 공동체의 이야기이며, 〈포제션〉은 해체되는 부부와 그 틈에서 자라나는 괴물의 이야기다. 그러나 카메라가 신체를 바라보는 방식과 공간의 온도에는 묘한 접점이 있다. 여성의 신체를 둘러싼 욕망과 공포, 현실에서 환각으로 변모하는 공간을 감각적으로 증폭시킨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고전적인 호러의 빨강은 피와 위험을 즉시 드러내는 쉬운 선택이지만 두 영화는 반대편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현실에서 색을 덜어낸 뒤 일상 자체를 악몽으로 만든다. 두 영화 속 푸른색은 누군가 떠난 뒤의 비어버린 방,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 없는 부부, 장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고립된 도시를 가리킨다. 원색의 공포가 베를린에 도착하자 색은 콘크리트와 겨울빛 속으로 가라앉는다.

*지알로: 이탈리아의 호러 영화 장르

춤추는 몸과 식어버린 역사, 〈서스페리아〉

〈Suspiria〉(2018) ⒸFILMGRAB

1977년 가을, 미국인 무용수 수지 배니언은 서베를린의 마르코스 무용단에 들어간다. 단원 패트리샤가 알 수 없는 공포를 호소하다 사라진 가운데 수지는 예술감독 마담 블랑의 눈에 들어 빠르게 중심 무용수로 성장한다. 이곳에서 춤은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인 동시에 다른 사람의 몸을 조종하는 기술이다. 수지가 연습실에서 몸을 꺾을 때 다른 방에 갇힌 무용수 올가는 같은 리듬에 붙들려 관절이 뒤틀린다. 아름다운 동작과 끔찍한 폭력이 하나의 안무 안에서 이어지며 관객은 감탄할 수도 고개를 돌릴 수도 없다.

〈Suspiria〉(2018) ⒸFILMGRAB

촬영감독 ‘사욤부 묵딥롬Sayombhu Mukdeeprom’은 ‘아피찻퐁 위라세타꾼Apichatpong Weerasethakul’과 오래 작업해 온 인물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2017)에 이어 구아다니노와 두 번째로 만난 그는 원작의 원색을 걷어내고 낮은 채도의 자연광과 거친 필름 입자를 중심으로 화면을 설계했다. 흐린 창밖과 젖은 도로, 낡은 벽과 무거운 커튼이 화면 전체의 체온을 낮춘다. 반대로 붉은색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깊숙이 눌려 있다. 피와 의식, 신체가 통제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에만 한꺼번에 표면으로 솟는다. 촬영 과정에서도 제작진은 회색과 갈색의 기반 위에서 붉은색이 도드라지도록 설계했다.

〈Suspiria〉(2018) ⒸFILMGRAB

구아다니노가 굳이 1977년의 베를린을 다시 불러낸 이유는 무용단 밖에서도 다른 권력 투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뉴스와 검문, 테러에 관한 대화는 마녀의 이야기를 방해하는 배경처럼 보이지만 무용단 내부의 갈등과 나란히 움직인다. 오래된 권력을 붙들고 있는 마르코스와 그 자리를 다른 방식으로 이어받으려는 블랑. 두 사람의 대립은 낡은 권력이 어떤 얼굴로 계승되는가를 묘사한다.

〈Suspiria〉(2018) ⒸFILMGRAB

패트리샤를 진료하던 정신분석가 클렘페러는 타인의 억압을 분석하면서도 전쟁 중 헤어진 아내 앙케의 흔적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이야기는 이 도시가 과거를 충분히 인정하지도, 애도하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서스페리아의 청회색은 추운 날씨의 표현을 넘어, 해소되지 못한 죄책감이 되어 콘크리트 안에 스며든다.

부부의 단절이 장벽을 닮아갈 때, 〈포제션〉

〈Possession〉(1981) ⒸDeep Fried Movies

포제션에서 첩보 업무를 마치고 서베를린의 집으로 돌아온 마크는 아내 안나에게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를 받는다. 그는 다른 남자가 갈등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안나를 뒤쫓는다. 그러나 그녀가 드나드는 낡은 아파트 안에는 인간이라 부르기 어려운 존재가 자라고 있다. 마크는 원인만 제거하면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지만, 원인과 별개로 이미 존재하는 거리감이 장벽처럼 두 사람을 밀어낸다. 

〈Possession〉(1981) ⒸDeep Fried Movies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촉수를 가진 정체불명의 괴물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생겨난 설명할 수 없는 거리다. 줄랍스키는 실제로 이 작품을 자신이 겪은 결혼의 파국에서 출발시켰으며, 영화의 공포를 괴물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이별에 가까운 것으로 설명했다.

〈Possession〉(1981) ⒸDeep Fried Movies

창백한 겨울 하늘과 푸른 기가 밴 콘크리트, 형광등 아래의 지하 통로와 타일 벽은 인물들의 격렬한 움직임을 아무 반응 없이 둘러싼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인, 안나가 지하 통로에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트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요동친다. 바닥에는 액체가 흩어지고 푸른 원피스는 젖은 벽처럼 몸에 달라붙는다. 피와 흰 액체, 깨진 식료품이 타일 바닥 위에 뒤섞이는 연출이 마치 몸 밖으로 무언가를 쏟아내는 기괴한 출산처럼 보이기도 한다. 안나는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린 사람이 아니라 사랑과 죄책감과 욕망이 지나치게 증폭되어 하나의 몸 안에 머물지 못하게 된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입은 푸른 원피스는 그래서 그것을 가둔 얇은 벽에 가깝다. 

가장 서늘한 색 블루

두 영화에서 베를린은 독특한 분위기를 제공하는 촬영지에 머물지 않는다. 서스페리아에서는  전쟁의 기억과 새로운 정치적 폭력 사이에서 과거를 다 말하지 못한 도시로, 포제션에서는 장벽을 사이에 두고 정서적으로, 물리적으로 갈라진 도시를 묘사한다. 분단이라는 시대적 요소 속에서 두 작품속에서 신체와 정신, 사랑과 욕망이라는 서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여기에 임계점의 블루가 있다. 

〈Possession〉(1981) ⒸDeep Fried Movies

‘압델라티프 케시시Abdellatif Kechiche’의 영화 제목 〈가장 따뜻한 색, 블루Blue Is the Warmest Color〉가 보여주듯 푸른색은 언제나 낮은 온도만을 뜻하지 않는다. 불꽃은 극점에 이르렀을 때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두 영화의 블루 역시 억눌린 욕망과 죄책감, 사랑과 증오가 계속 증폭되다 더 이상 붉은색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지점을 넘어버린 색이다. 

영화가 끝난 뒤 남는 것은 충격을 주었던 괴물의 형태가 아니라 흐린 창문과 젖은 도로, 형광등이 켜진 지하 통로다. 그 사이로 안나의 푸른 원피스가 잠시 스쳐 가고, 마르코스 무용단의 회색 커튼이 천천히 닫힌다. 두 영화의 푸른빛은 냉정함과 광기가 겹쳐 비명이 지나간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다. 열기가 가라앉지 않는 여름밤, 다시 이 영화들을 떠올려본 것도 그 차가운 화면 안에 우리를 식혀 줄 무언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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