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그로테스크의 귀환, 낯선 것을 추구하는 인간을 위하여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붙이는 단어가 하나 있다.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불편하고, 어딘가 낯설지만 시선을 뗄 수 없는 것. 알 것 같으면서도 명확히 설명되지 않을 때 우리는 '그로테스크(Grotesque)하다'라고 표현한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하게 쓰이며 원래는 무엇을 가리켰는지 잊힌 단어. 그러나 알고 보면 이 단어는 무척이나 깊고 오래된 어원을 지니고 있다. 로마 시대의 어느 어두운 ‘동굴’에서 유래한 이 미심쩍고도 아름다운 단어의 기원을 따라 몇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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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의 귀환, 낯선 것을 추구하는 인간을 위하여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붙이는 단어가 하나 있다.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불편하고, 어딘가 낯설지만 시선을 뗄 수 없는 것. 알 것 같으면서도 명확히 설명되지 않을 때 우리는 '그로테스크(Grotesque)하다'라고 표현한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하게 쓰이며 원래는 무엇을 가리켰는지 잊힌 단어. 그러나 알고 보면 이 단어는 무척이나 깊고 오래된 어원을 지니고 있다. 로마 시대의 어느 어두운 ‘동굴’에서 유래한 이 미심쩍고도 아름다운 단어의 기원을 따라 몇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Editorial

그로테스크의 귀환, 낯선 것을 추구하는 인간을 위하여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붙이는 단어가 하나 있다.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불편하고, 어딘가 낯설지만 시선을 뗄 수 없는 것. 알 것 같으면서도 명확히 설명되지 않을 때 우리는 '그로테스크(Grotesque)하다'라고 표현한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하게 쓰이며 원래는 무엇을 가리켰는지 잊힌 단어. 그러나 알고 보면 이 단어는 무척이나 깊고 오래된 어원을 지니고 있다. 로마 시대의 어느 어두운 ‘동굴’에서 유래한 이 미심쩍고도 아름다운 단어의 기원을 따라 몇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고전적 아카이브, 동굴에서 나온 것들

‘그로테스크Grotesque’라는 단어는 동굴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그로타Grotta’에서 유래했다. 15세기 말 로마, 땅속에 파묻혀 있던 네로 황제의 거대한 궁전 도무스 아우레아Domus Aurea가 우연히 발견된다. 당시 사람들은 밧줄을 타고 지하로 내려가 횃불로 벽을 비춰보았는데 그곳에는 누구도 본 적 없는 기이한 장식 언어가 가득했다. 흰 배경 위에 켄타우로스, 날개 달린 스핑크스, 환상적인 수중 생물들이 뒤섞여 실재하는 것과 허구의 상상이 벽면 위에 함께 그려져 있었다. 인체와 짐승과 식물이 뒤섞인 이 벽화들은 동굴에서 나온 기이한 것들이라는 의미에서 ‘그로테스크’라 불리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미술사가 조르조 바자리는 이 발견의 충격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조반니가 라파엘로와 함께 그것들을 보러 갔을 때,
두 사람 모두 그 작품들의 신선함과 아름다움, 그 탁월함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조반니는 그것들을 너무나 많이 스케치하여 항상 방대한 양의 드로잉을 손에 쥐고 있었다.

─ <예술가 열전> 중 '조반니 다 우디네의 생애' (1550)

도무스 아우레아Domus Aurea를 발견한 당대 최고의 화가들은 이를 단순히 구경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벽면의 도상을 치열하게 스케치하며 동굴을 일종의 거대한 아카이브로 삼았다.

그중 한 명이었던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는 그곳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1519년 바티칸 궁전Vatican Palace의 벽면을 장식했다. 기이하고 변덕스러운 환상이 왜 아름다울 수 있는지, 왜 세상에 그려져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녹여낸 결과물이었다. 당시 라파엘로가 절친한 친구 발타사레 카스틸리오네Baldassare Castiglione에게 보낸 편지에는 예술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잘 드러난다.

아름다운 여성을 그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아름다운 여성들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안목을 지닌 자도 아름다운 여성도 모두 귀한 탓에,
저는 제 마음속에 떠오르는 어떤 관념Certa Idea에 의지하곤 합니다.

도무스 아우레아의 벽화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낯선 아름다움을 보고 그것으로부터 자신만의 고유한 결과물로 길어 올리는 것은 이런 방향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카이브는 목적지가 아닌 출발점

Michael Rock. Ⓒ2×4.org

디자인 스튜디오 2×4의 설립자 마이클 록Michael Rock은 2026년 발표한 에세이 〈No Time Like the Present〉에서 이 오래된 일화를 직접 꺼냈다. 그는 현대 패션과 AI가 아카이브를 소비하는 방식을 언급하며, 과거 라파엘로가 동굴 속에서 행했던 탐색과 지금의 디자이너들이 처한 현실을 대조한다. 오늘날 ‘그로테스크’를 검색하면 고고학 사진, 라파엘로의 드로잉, 관련 학술논문들이 동시에 노출된다. 이제 모두가 어두운 곳에 밧줄을 타고 내려가지 않아도 이미 동굴 안에 앉아 있다. 지식은 키워드 유사도 순으로 배열되고, 역사는 연대기가 주는 울림 없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처럼 검색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라파엘로’, ‘그로테스크’, ‘미래주의’ 같은 단어들을 무작위로 입력하면, AI는 즉시 그럴듯한 이미지를 생성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각각의 레퍼런스가 지니고 있던 고유한 맥락과 방향성은 읽어내지 못하고 출처 없는 새로운 뭔가가 등장한다. 마이클 록은 이를 두고 날카로운 표현을 남겼다. “AI는 패턴을 인식하지만 의미는 읽지 못한다. 기억 없는 인용Allusion without Memory”이다.

우리 눈 앞에 놓여진 AI라는 거대한 동굴

결국 문제는 기술이나 AI 자체가 아니다. 정보에 도달하는 속도는 인간의 통찰이 될 수 없고, 무한한 데이터에 닿는 접근이 곧 본질에 대한 이해를 담보하지도 않으며, 유사성을 찾아내는 패턴 인식이 역사의 맥락을 읽어내는 지식으로 치환될 수는 없다.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새로운 도구의 등장과 그에 따른 저항 속에서 ‘인간다움’을 정의해 온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저 새롭다는 이유로 찬양하거나, 기괴하다고 쉽게 외면하지 않고, 설명할 수 없는 낯선 아름다움 속에서 도리어 이를 집요하게 곱씹었던 라파엘로의 시간이 주는 미덕이 있다. 언제든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천 년의 동굴을 눈앞에 두고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만의 횃불을 든 채 낯선 것을 응시하며 새로운 관념을 만들어 낼 것인지, 아니면 잔해를 끝없이 재배열하는 것에 머무를 것인가. 동굴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고, 선택은 다시 인간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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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의 귀환, 낯선 것을 추구하는 인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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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시계, 케이스백에 새겨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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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가 발견한 각자의 인생, 자기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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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함의 여행, 조선의 이름 없는 항아리가 바다를 건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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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에 앞서, 소니 그리고 모리타 아키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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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함이라는 가업, 계승되는 천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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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산업 유산의 미학적 환생, 무덱과 폰다지오네 프라다

21

비요크의 시각적 유산, 그 궤도를 수놓은 비주얼리스트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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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찰나를 포착했던, 하이엔드 포인트 앤 슛 카메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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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빙 펜에서 더 로우까지, 비워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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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구아다니노가 그린, 에로스와 타나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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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은 빈 방에서 태어난다, 도널드 저드와 릭 루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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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들의 영혼을 깨운 무구한 사물들

15

카를로 스카르파와 아바텔리스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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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실재가 빚어낸 초현실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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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제약, 상상력을 붙잡아두는 창조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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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 움베르토 에코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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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자키 쿄코와 도시적 에로티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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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라는 완벽한 질서, ‘우연 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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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흔적을 지우는 기술, 스프레차투라에 대하여

08

미완성과 우연의 초상, 〈휘슬재킷〉

07

악의 미학을 위한 클래식

06

손의 여운, 사물이 살아 있는 시간: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

05

첫 권의 문학: 세계를 여는 방식에 대하여

04

연옥 단계의 클래식

03

호모 콜렉투스 – MoMA가 수집한 사물들

02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시지프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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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오키프와 마이크로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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