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수영장의 화가가 남긴 가장 중요한 질문

런던의 스튜디오, 휠체어에 앉은 한 노화가가 하루 세 시간씩 붓을 들었다. 지난 6월 11일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대중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를 캘리포니아의 싱그러운 햇빛과 푸른 수영장을 그린 화가로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림을 그리면 사물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더 선명하게, 더 선명하게. 마침내 눈이 아플 정도로.
─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실제로 그의 대표작인 〈A Bigger Splash〉는 20세기 회화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고, 호크니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밝고 낙천적인 색채의 대명사로 통해왔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평생 변치 않고 반복된 하나의 질문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과연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미술적 호기심이 아니었다. 인간이 현실을 경험하는 방식,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감각인지, 그리고 회화는 그 복합적인 경험을 얼마나 정직하게 담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탐구의 중심에는 회화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여겨졌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카메라는 외눈박이, 인간의 눈은 살아 움직인다


호크니는 사진의 역사와 기능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탐구한 예술가였다. 그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카메라는 외눈박이다.” 이 짧은 문장은 그가 가진 시각에 관한 생각을 함축한다. 셔터가 눌리는 찰나, 카메라는 특정한 순간을 포착하고 순간의 현실은 하나의 이미지로 형태가 전환된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세상을 경험하지 않는다. 우리는 걸으며 보고, 고개를 돌리며 공간을 탐색한다. 대화하는 상대의 눈과 입, 손짓을 번갈아 보며 하나의 인상을 형성한다. 기억은 현재의 경험과 겹치고, 감정은 풍경의 색채를 바꾸기도 한다. 인간의 시각은 하나의 프레임이 아니라 시간과 움직임이 축적된 경험이다. 사진은 놀라운 기록 도구지만 인간이 경험하는 세상 전체를 담아내지는 못한다. 호크니는 그 한계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호크니는 사진을 회화의 적으로 두지 않았다. 1960년대부터 폴라로이드를 회화의 참고 자료로 사용했고, 빛과 각도와 인물의 자세를 확인하는 시각적 메모로 삼았다. 전환점은 1982년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 큐레이터 알랭 사야그Alain Sayag가 그의 개인 소장 사진 수천 장을 전시하자고 제안했고, 자료 정리를 위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쓰기 시작했다. 호크니는 찍은 사진들을 이어 붙였다. 그때 그는 지금껏 사진에서 본 적 없는 공간을 보았다고 말했다. 필름 천 달러어치를 곧바로 주문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카메라는 매체다. 예술도 기술도 취미도 아니라, 도구다. 연필로 점만 찍다가 선을 그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해방감 같은 것.” 그전까지 사진은 회화를 위한 보조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어 붙인 폴라로이드 앞에서 그는 멈췄다. 그것을 다시 캔버스로 옮길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화면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의 프레임을 깨고 시선을 재조립하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조이너Joiners’라 불리는 사진 콜라주 연작이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여러 장의 폴라로이드와 35mm 사진을 이어 붙여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중 〈Pearblossom Hwy., 11–18th April 1986, #2〉는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의 교차로를 담은 대표작이다. 원래는 미국의 출판사 ‘콘데 나스트Condé Nast’에서 발행하는 〈배니티 페어Vanity Fair〉의 의뢰로 시작된 작업이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의 소설 〈롤리타Lolita’〉속 ‘험버트 험버트’가 남서부를 가로질러 차를 모는 장면을 다룬 기사의 삽화였는데, 작업은 의뢰의 범위를 훌쩍 벗어났다. 사진을 찍는 데만 8일이 걸렸고, 800장 이상의 이미지를 이어 붙여 완성했다. 화면 앞에 서면 시선이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왼쪽 위의 파란 하늘에서 오른쪽 아래 정지 표지판으로, 다시 도로 위의 빈 캔으로. 원근은 하나의 중심으로 모이지 않는다. 사진인데 사진처럼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그 도로 앞에 서 있을 때 눈이 움직이는 방식과 닮았다.
우리는 실제로 세상을 이렇게 경험한다. 걸으며 보고, 멈춰서 다시 바라보고, 기억 속에서 장면들을 이어 붙인다. 누군가를 떠올릴 때도 단 하나의 사진이 아니라 수많은 표정과 움직임이 겹쳐진 인상을 떠올린다. 조이너 연작은 단순한 콜라주가 아니었다. 사진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는 믿음 대신, 현실은 수많은 시선이 중첩되어 형성된다는 것을 사진의 방식으로 보여준 작업이었다.
적이 아닌 동반자, 사진을 품은 회화


ⒸThe David Hockney Foundation
호크니와 사진의 관계가 특별한 이유는 그가 끝내 사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그는 오페라 무대 디자인을 구상할 때도 사진을 활용했고, 초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카메라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더 나아가 그는 르네상스 회화에 관한 오랜 연구 끝에 ‘명화의 비밀Secret Knowledge’라는 책을 출간하며, 고전 화가들 역시 광학 장치를 활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른바 ‘호크니-팔코 논제Hockney-Falco Thesis’로 알려진 이 가설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미술사학자들은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고, 다른 이들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호크니에게 중요한 것은 기술은 인간의 시선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그 자체다. 카메라 렌즈, 사진기, 아이패드까지. 새로운 기술은 단순히 새로운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왔고, 호크니는 그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현실은 결정적 순간이 아닌, 경험의 총합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감정을 덧입히며, 기억을 통해 풍경을 재구성한다. 현실은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의 중첩이다. 호크니는 평생 회화와 사진, 판화와 디지털 드로잉을 오가며 이 사실을 증명하려 했다. 수영장의 물보라에서 사막의 도로로, 폴라로이드의 작은 사각형에서 아이패드의 빛나는 화면으로 건너오며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해 인간의 시각이 얼마나 복합적이고 풍요로운지를 보여주었다.

마지막까지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다고 전해지는 그가 그날 어떤 도구를 들고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웹사이트에 놓여있는 이 한 장의 이미지는 그가 눈을 통해 세상에 도달한 대답처럼 보인다. 평생 살아가며 수없이 쌓아 올린 기억과 감정, 움직임과 시선의 총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