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다다미 위에서 배우는 삶의 속도

카메라 높이를 결정하는 것은 세트의 바닥이다.
일본식 다다미방에서 생활할 때는 앉아 있는 것이 기본이다.
앉아 있는 사람을 찍으려면 카메라 역시 낮아질 수밖에 없다.
특별한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 오즈 야스지로(Yasujiro Ozu)
다다미 위에 놓인 찻잔은 화면 아래에 머물고, 사람들의 말은 방 안의 낮은 공기 위로 조용히 오고 간다. 오즈 야스지로Yasujiro Ozu의 영화를 처음 접하면 의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는다. 격렬한 갈등도, 인물을 집요하게 따라붙는 카메라도, 감정을 고조시키는 극적인 음악도 없다. 대신 식사를 준비하는 손길, 복도를 가로지르는 발소리, 사람이 떠난 뒤 남겨진 방의 고요함 같은 일상의 장면들이 보인다.

그의 카메라는 대부분 다다미 위에 앉은 사람의 눈높이인 약 90cm 부근, 다다미 위 한 뼘 높이에 멈춰 선다. 오즈는 이 높이를 화면의 기하학적 균형을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좌식 생활을 하는 일본식 방은 미닫이문과 다다미가 만드는 직선이 많아, 카메라가 조금만 높아져도 화면 윗부분이 붕 뜨고 균형이 흐트러진다. 카메라를 낮게 앉히면 그 복잡한 선들이 단정하게 정리된다.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무성영화와 흑백, 컬러를 가로지르며 가족의 시간을 주로 찍었던 오즈는 인간의 시야와 가장 유사해 왜곡이 없는 50mm 표준 렌즈 하나를 고집했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장면이 끝날 때까지 카메라를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이 서두르지 않는 카메라를 통해 관객은 일방적인 관찰자가 아니라, 그 방 한구석에 함께 앉아 있는 마주 보는 상대가 된다.
필로우 샷의 느슨한 이야기




오즈의 영화에서 인물과 인물 사이, 혹은 장면과 장면 사이에 틈입하는 정적인 정물이나 풍경 화면을 ‘필로우 샷Pillow Shot’이라 부른다. 빨랫줄에 걸린 옷가지, 지나가는 기차,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주전자와 찻잔처럼 줄거리를 앞으로 밀어붙이는 데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 장면들을 비평가 노엘 버치가 오즈의 영화 언어를 설명하며 붙인 이름이다. 일본 전통 시가인 ‘와카和歌’에서 본론이 나오기 전 호흡을 고르고 시적 분위기를 띄우던 문학적 수식어 ‘마쿠라코토바枕詞, 베개말’에서 유래한 이 연출은 이야기 사이에 깊은 쉼표를 만들어낸다. 잠시 머무르는 빈 방과 복도, 주전자의 시선은 사건 사이에서 감정의 속도를 낮춘다. 관객은 그 공백 사이에서 방금 지나간 대화의 잔향을 되새기고 다가올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대표적인 흑백 영화 〈만춘〉에서 아버지와 딸의 대화 사이에 놓인 꽃병 하나가 대표적이다. 오즈는 작은 것들의 무게를 알고 그것을 영화의 중심에 놓았다. 생각해 보면 삶을 이루는 것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식탁이 자주 나오고 복도와 다다미방이 자주 배경이 된다. 조르조 모란디가 병과 상자와 작은 용기를 계속 다시 배열하며 미세한 빛과 간격을 보았던 것처럼, 오즈는 가족극이라는 익숙한 틀 안에서 거의 같은 사물과 공간을 다시 놓았다. 가족의 대화와 끓는 주전자, 이별의 순간과 정리된 식탁, 말하지 못한 마음과 문턱의 그림자가 같은 화면 안에 놓인다.
소박함은 비어 있음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날씨는 대개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연출 요소로 쓰인다. 동시대의 많은 감독들이 비와 안개, 어두운 음영을 즐겨 쓴 것과 달리 오즈는 마른 햇빛을 골라 촬영했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종종 화면을 보며 “날이 참 좋네요”라고 일상적인 인사를 건넨다. 오즈는 날씨와 빛이 통제 없이 바뀌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우연한 시선이 프레임에 끼어드는 야외 촬영을 꺼렸다. 그의 세계는 세트장 내부에 지어진 철저히 통제된 실내였고, 그 안에서 모든 사물은 정해진 자기 자리를 가졌다. 방석 하나의 위치와 각도까지 엄격하게 정해두는 손길이 만든 질서. 그것이 오즈의 소박함이었다.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는 방식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동경 이야기〉는 늙은 부모가 도쿄에 사는 자식들을 찾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며칠의 여정을 담는다. 자식들의 바쁘고 미적지근한 환대 속에 돌아간 고향에서 어머니는 곧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오즈는 이러한 상실을 거대한 감정의 폭발로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빈방을 보여주고, 정리된 식탁을 비추며, 누군가 떠난 뒤의 정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그 상실감은 마치 기차가 스쳐 지나간 뒤에 바람이 한차례 더 이듯, 사건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공기의 미세한 변화로 관객에게 전해진다. 필로우 샷은 바로 그 덧없고 아련한 잔향을 붙잡기 위한 미학적 장치였다.

오즈를 경외하며 그 뒤를 따른 현대 영화의 거장들은 많다. 독일의 ‘빔 벤더스Wim Wenders’는 다큐멘터리 〈도쿄가〉와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통해 소박한 일상의 위대함을 비추며 오즈에게 완벽한 헌사를 바쳤고, 미국의 ‘짐 자무시Jim Jarmusch’는 〈천국보다 낯선〉과 〈미스터리 트레인〉에서 인물들의 사소한 대화와 여백의 미학을 미국적 서브컬처로 재해석했다.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또한 헌정 영화 〈파이브〉를 통해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 채 세상을 응시하는 수평의 시선을 이어갔다. 특히 핀란드의 ‘아키 카우리스마키Aki Kaurismäki’는 오즈에게 “내 영화는 전부 당신 탓”이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북유럽 핀란드의 차가운 식탁과 도쿄의 다다미방은 물리적으로 아득히 멀지만, 인물의 감정이 휩쓸고 간 자리를 카메라로 오래 바라본다는 점에서 미학적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
오즈의 영화는 스크린 위에 흐르는 삶 그 자체다.
그의 카메라는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세상이 스스로를 드러낼 때까지 겸손하게 기다린다.
─ 빔 벤더스(Wim Wenders)
다다미 위에서 배우는 삶의 속도

오늘날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가 여전히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현대의 관객은 완벽하고 촘촘한 플롯Plot 혹은 환상적인 영상미나 극적인 쾌감을 기대하곤 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 삶의 대부분은 거대한 극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와 차를 마시는 시간, 창밖을 바라보는 오후, 특별할 것 없는 식사의 반복 속에서 우리의 진짜 하루가 만들어진다.
오즈는 이 평범한 순간들을 건너뛰지 않고 똑바로 응시함으로써 삶의 본질을 이야기했다. 세상을 조금 더 낮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 설명보다 관찰을 선택하는 일, 그리고 지나쳐버리기 쉬운 조용한 순간들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일. 되돌아보면 좋았다고 떠오르는 것은 함께 통과했던 조용한 순간들이기에 그의 영화처럼 오늘도, 서두르지 않는 방식으로 평범한 하루의 아름다움을 기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