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에스프레소 머신 by 데이비드 린치

(오) La Marzocco GS/3 Home Espresso Machine, The David Lynch Collection ⒸJulien’s Auctions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가 세상을 떠난 뒤 경매에는 미완성 영화 〈Ronnie Rocke〉의 각본과 함께 기타, 레코드, 목공 도구, 작업대 같은 그의 일상적인 물건 약 450점이 올라왔다. 그중에는 그가 직접 사용하던 ‘라 마르조코La Marzocco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었다. 하루에도 여러 잔의 커피를 마셨고, 자신의 이름을 붙인 원두까지 판매했던 린치에게는 커피는 단순한 취향 이상으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일부에 가까웠다. 그의 에스프레소 머신 가운데 한 대는 결국 45,500달러, 한화로 약 6,300만 원에 팔렸다.
그래서인지 린치의 영화에는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유독 자주 등장한다. 〈트윈 픽스〉의 주인공은 “damn fine cup of coffee”를 외치고 극 중 인물들은 기묘한 사건의 한가운데에서도 다이너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디저트를 먹는다. 린치 자신이 좋아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캐릭터의 일상에도 스며든 것처럼 보인다. 붉은 커튼과 어두운 복도처럼 기묘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그의 세계 한쪽에는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커피 한 잔이 반복되고 있었다.
작은 은제 빗 by 프레드 머큐리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의 개인 컬렉션에는 왕관과 망토, 무대 의상과 자필 가사처럼 누구나 그에게 기대할 법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그 사이에는 손바닥보다 작은 티파니앤코Tiffany & Co.의 은제 콧수염 빗도 있었다. 길이 약 7cm에 불과한 이 작은 빗은 예상가를 훌쩍 넘어 한화로 약 3억 원에 팔렸다.
1980년대에 접어들며 프레디 머큐리는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1985년 라이브 에이드Live Aid 무대처럼 흰색 탱크톱과 청바지, 팔에 두른 스터드 밴드와 함께 짙은 콧수염은 거의 하나의 상징처럼 남았다. 하지만 그렇게 거대한 이미지를 위해 그는 매일 거울 앞에서 얼굴을 정돈했을 것이고, 이 7cm짜리 빗은 그의 내밀한 순간을 상징한다. 손에 쥐고 콧수염을 한 번씩 빗었을 아주 짧고 평범한 순간. 수만 명이 기억하는 얼굴 뒤에는 한 사람이 매일 작은 물건을 들고 모두가 기억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운석으로 만든 칼 by 앤서니 보데인

(오) Anthony Bourdain ⒸScatti di Gusto
요리사로 일을 시작해 저서 〈Kitchen Confidential〉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 카메라를 들고 세계 각지의 부엌과 골목을 돌아다니며 음식과 사람을 이야기하는 방송인이었던 앤서니 보데인Anthony Bourdain. 그의 유품 중에는 유명한 칼 장인 밥 크레이머Bob Kramer가 제작한 셰프 나이프가 있었다. 칼날에는 운석에서 얻은 금속이 사용되었는데 지구 밖에서 온 금속을 섞어 만든 칼을 실제 주방에서 사용한다는 점에서 실용적이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낭만적인 물건이었다. 보데인이 세상을 떠난 뒤 열린 경매에서 이 칼은 231,250달러, 한화로 약 3억 2천만 원에 팔렸다.
보데인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곳의 음식을 먹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장소를 기록했다. 고급 레스토랑 대신 시장과 허름한 식당을 찾아 현지인들의 일상에 슬그머니 자리를 잡곤 했던 그가 우주에서 떨어진 금속으로 만든 칼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조금 과장된 농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특별한 재료로 만들어졌어도 결국 재료를 써는 지극히 실용적인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이 오히려 보데인과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미래로 보낸 초대장 by 스티븐 호킹

(오) Stephen Hawking’s ⒸChristie’s
2009년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시간여행자를 위한 파티를 열었다. 장소와 음식, 샴페인까지 모두 준비했지만, 초대 사실을 공개한 것은 행사가 모두 끝난 뒤였다. 언젠가 미래에 시간여행 기술이 발명된다면 그때 이 초대장을 본 누군가가 과거로 돌아와 파티에 참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날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이 실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초대장 중에 호킹이 소장했던 한 장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크리스티Christie’s 경매에서 11,250파운드, 한화로 약 2,100만 원에 팔렸다.
평생 블랙홀과 우주의 기원, 시간의 구조를 연구했던 물리학자가 자신의 연구 주제를 실제 파티로 옮겼다는 점이 흥미롭다. 시간여행이라는 거대한 질문을 논문 속에만 두지 않고 풍선과 샴페인이 놓인 방으로 가져온 것이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결과까지도 그에게는 하나의 실험이었을 것이다. 박사 논문이나 휠체어처럼 그의 연구와 삶을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물건들도 남았지만 이 작은 초대장에는 조금 다른 호킹이 있다. 우주를 연구하면서도 그 거대한 질문을 농담처럼 다룰 수 있었던 사람의 흔적이다.
흰색 전화기 by 오드리 헵번

(오) Audrey Hepburn, Cover of Life Magazine ⒸTrimper Gallery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의 개인 컬렉션에는 지방시Givenchy 드레스와 영화 대본, 사진과 보석처럼 그녀의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물건들이 있었다. 그 사이에는 1960년대에 만들어진 흰색 플라스틱 다이얼 전화기도 있었다. 평범한 생활용품이지만 화려한 드레스와 보석들 사이에 놓였기 때문에 오히려 더 눈에 띄는 물건이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스타일 아이콘의 소유품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특별한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헵번 역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이 수화기를 들고 손가락으로 번호를 하나씩 돌렸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전화를 기다리기도 하고 통화를 마친 뒤 수화기를 다시 제자리에 놓았을 것이다. 지방시의 드레스가 영화와 사진 속 오드리 헵번을 보여준다면 이 오래된 전화기는 카메라가 꺼진 뒤의 시간을 보여준다. 아이콘이라는 이미지에서 조금 떨어져 한 사람이 실제로 보냈던 하루에 가까워지는 물건이다.
총알 맞은 워홀 by 데니스 호퍼

(오) Dennis Hopper in 〈The Last Movie〉, 1971 ⒸThe Hopper Art Trust
데니스 호퍼Dennis Hopper는 배우이자 감독이면서 사진가였고 현대미술의 열성적인 컬렉터이기도 했다. 그의 컬렉션에는 앤디 워홀Andy Warhol 같은 실제로 교류했던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이 있었다. 그 가운데 특히 유명한 것은 앤디 워홀의 ‘마오쩌둥 초상’이다. 호퍼는 어느 날 이 작품을 향해 총을 쐈고, 작품에는 실제 총알 자국이 남았다. 이후 작품을 본 워홀은 흔적을 지우는 대신 그 주변에 표시를 남기고 ‘Bullet Hole’과 ‘Warning Shot’이라고 적었다.
원래라면 작품의 훼손으로 끝났을 일이 두 사람 사이에서는 작품 일부가 되어버렸다. 호퍼가 총을 쏘고 워홀이 그 흔적을 다시 받아들이면서 한 장의 프린트 위에 두 사람의 행동이 겹쳐졌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히 호퍼가 어떤 미술을 좋아했는지를 넘어 그가 어떤 사람들과 가까이 지냈는지를 보여준다. 작품을 사고 벽에 걸어두는 일반적인 수집이 아니라 총알 자국까지 남길 만큼 거칠고 이상했던 한순간이 사라지지 않고 작품 표면에 그대로 남아 있다. 호퍼의 컬렉션은 무엇을 소유했는지보다 누구와 같은 시간을 살았고 어떤 교류를 했는지 보여주는 인간 관계도에 가깝다.
아이팟 by 칼 라거펠트

(오) Karl Lagerfeld ⒸBritish Fashion Council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가 세상을 떠난 뒤 열린 경매에는 옷과 가구, 드로잉뿐 아니라 수십 개씩 묶인 아이팟iPod도 등장했다. 그중에는 서로 다른 색의 ‘iPod Nano’ 80개를 한데 모은 묶음도 있었다. 기기 뒷면에는 작은 원형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그 위에는 음악이나 장소를 구분하기 위해 적어둔 것으로 보이는 라거펠트의 손 글씨가 남아 있었다. 하나의 기기에 수천 곡을 넣을 수 있는 시대였지만 그는 음악을 한곳에 모으기보다 여러 대의 아이팟으로 나누어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유명했던 디자이너가 한편으로는 음악을 예전의 카세트테이프처럼 물리적으로 나누어 보관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작은 기기마다 다른 음악을 넣고 스티커를 붙이고 손으로 이름을 적었다. 무엇을 듣고 어떻게 분류했는지까지 보이는 그의 방식. 수십 개의 아이팟이 가지런히 놓인 모습은 라거펠트가 남긴 거대한 컬렉션 가운데 오히려 가장 개인적인 서랍 하나처럼 보인다.
왕 없는 체스 세트 by 잉마르 베리만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은 〈제7의 봉인〉, 〈페르소나〉, 〈화니와 알렉산더〉 등을 남긴 스웨덴의 영화감독으로, 죽음과 신의 부재, 인간 사이의 침묵 같은 질문을 집요하게 영화에 담았다.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뜻에 따라 스웨덴 동남부의 작은 섬 ‘파뢰Fårö’에 살던 집과 개인 소지품들이 경매에 나왔다. 책상과 음반, 생활용품과 쓰레기통까지 포함된 337점 가운데 특히 화제가 된 것은 오래되고 일부가 깨진 체스 세트였다. 흰색 킹 하나가 사라진 이 세트는 〈제7의 봉인〉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세트로 여겨졌고, 예상가를 크게 넘어 한화 약 1억 5천만 원에 낙찰됐다.
1957년 영화 〈제7의 봉인〉에서 기사는 자신의 죽음을 늦추기 위해 죽음과 체스를 둔다. 검고 흰 체스판을 사이에 둔 장면은 이후 베리만의 영화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다. 그런데 감독이 실제로 남긴 체스 세트에는 정작 왕 하나가 없다. 영화 속 죽음과 체스라는 상징이 감독의 집에서 오래 사용된 낡은 물건과 우연히 겹친 셈이다. 실제로 사용되며 깨지고 하나씩 사라진 말들 가운데 하필 왕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사실은, 죽음과 마주 앉았던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남겨둔 것처럼 보인다.
모아둔 호텔 열쇠 by 프랭크 자파

(오) Frank & Gail Zappa Estate ⒸJulien’s Auctions
1960년대 밴드 더 마더스 오브 인벤션The Mothers of Invention을 이끌며 록과 재즈, 현대 클래식을 뒤섞은 실험적인 음악을 60여 장의 앨범에 담아낸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 프랭크 자파Frank Zappa. 풍자와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그는 1993년 세상을 떠났다. 프랭크와 그의 아내 게일 자파Gail Zappa의 유산이 2016년 경매에 나왔을 때에는 기타와 무대 의상, 골드 레코드와 공연에 사용한 오브제처럼 그의 음악 여정을 보여주는 물건들이 주로 있었다. 그 사이 눈에 띄는 것은 부부가 여행하며 모아둔 호텔 열쇠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체크아웃하며 프런트에 반납하지만, 자파 부부는 몇몇 열쇠를 집으로 가져와 보관했다.
프랭크 자파는 긴 시간 동안 공연을 위해 끊임없이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했다. 무대에 오르고 호텔로 돌아와 잠을 자고 다음 날 다시 다른 도시로 떠나는 일이 반복됐다. 그에게 호텔방은 집은 아니지만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임시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런 장소를 기억하기 위해 남긴 것이 펜이나 메모지 같은 것들이 아니라 반납하지 않은 작은 열쇠였다는 점이 재미있다. 복잡한 구성과 기괴한 유머로 음악을 만들었던 사람에게도 지나간 장소를 물건 하나로 기억하려는 평범한 습관이 있었다. 수많은 공연 날짜가 아니라 서랍 속 호텔 열쇠들이 오히려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을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서명하지 않은 카드 by 무하마드 알리

(오) World Heavyweight Boxing Champion Muhammad Ali ⒸFrank Empson
1967년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는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하여 유죄 판결을 받았고 세계 챔피언 타이틀과 선수 자격을 박탈당했다. 복서로서 가장 빛나야 할 전성기의 3년 반을 링 밖에서 보낸 뒤, 1971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그의 유죄 판결을 뒤집었다. 알리가 세상을 떠난 지 9년이 지난 2025년, 이 서명되지 않은 징집 카드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300만에서 500만 달러, 한화로 약 41억에서 69억 원의 추정가를 받았다.
챔피언 벨트나 경기에서 입었던 트렁크가 그가 누구와 싸워 이겼는지를 기록한다면, 이 카드는 그가 무엇을 거부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름이 적혀 있어야 할 서명란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작은 공백은 군 복무 절차에 응하지 않았던 그의 선택과 이후 감당해야 했던 시간을 함께 의미한다. 그의 삶에서 가장 선명한 흔적은 무언가를 적어 넣은 자리가 아니라 감당하고 비워둔 자리라고도 볼 수 있다.
Editor’s Comment
우리도 매일 같은 물건들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커피를 내리고 전화를 걸고 요리를 하고, 머리를 빗고 여행에서 가져온 작은 물건을 서랍에 넣는다. 유명인들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사용했던 물건에는 어느 순간 이름과 가격이 붙었고, 누군가는 그것을 사기 위해 예상가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불했다. 그저 한 사람의 삶을 따라 사용되던 도구가 주인이 떠난 뒤에는 그의 명성과 함께 하나의 유품이 된다. 그 가격에는 물건 자체의 가치뿐 아니라 떠난 사람의 일부라도 가까이 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매겨져 있을 것이다.
주인이 죽으면 사용하던 물건의 시간도 함께 멈춘다. 린치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더 이상 그의 커피를 데우지 않고, 베리만의 체스판에는 여전히 흰 킹이 없으며, 라거펠트의 아이팟에서는 더 이상 그가 고른 음악이 재생되지 않는다. 한때 손에 들리고 움직이며 매일의 일부였던 물건들은 이제 각자의 방식으로 멈춘 채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있던 자리를 향해 남겨진 작은 표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