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모두가 잠든 뒤에야 보이는 것들

1908년 벨기에의 항구 도시 오스텐더Oostende의 밤을 종이 위에 펼쳐둔 이 풍경은 백 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늦은 밤 카메라로 찍었을 법한 장면과 닮아 있다. 검은 바다와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가로등, 어둠 속에 멈춰 선 비틀거리거나 춤을 추고 있을 익명의 사람 하나. 이 밤을 그린 사람은 벨기에 화가 레옹 스필리아르트Léon Spilliaert다. 1881년 북해에 면한 오스텐더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이 도시를 반복해서 그렸다. 당시 오스텐더는 작은 어촌에서 왕실과 부유한 휴양객들이 찾는 해변 도시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해안을 따라 카지노와 호텔, 긴 산책로와 왕립 갤러리가 들어섰지만 스필리아르트의 그림에서 그런 번화함은 보이지 않고 모두가 사라진 여백이 두드러진다.
밤을 걷는 사람

젊은 시절 위장 질환과 불면에 시달렸던 그는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홀로 해안과 방파제를 오래 걸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면 낮 동안 배경에 묻혀 있던 것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바다를 바라보기 위해 세운 난간은 긴 직선이 되고 길을 밝히던 가로등은 검은 면 위에 놓인 작은 빛이 된다.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에서 사람이 사라지자, 오히려 도시의 형태가 선명해진다. 스필리아르트가 활동하던 1900년대 초 유럽에는 현실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꿈과 불안, 죽음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미지로 만들려는 상징주의가 여전히 강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 역시 그 흐름에서 출발했지만, 그의 풍경은 종종 훨씬 뒤의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바다와 산책로는 몇 개의 선과 넓은 빈 면으로 줄어들고 사람은 점처럼 작아진다.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도 이러한 정제된 풍경에서 훗날의 미니멀리즘을 예고하는 듯한 면모를 언급한다.

1908년의 〈Digue la nuit〉를 보면 희미한 불빛이 물 위에서 길게 흔들리고 바다와 하늘은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면을 먹으로 칠한 듯한 도시의 농담은 스필리아르트가 자주 사용한 재료의 느낌과도 잘 맞았다. 그는 유화보다 먹과 수채, 파스텔, 색연필 같은 재료를 종이 위에 겹쳐 사용했고 이 작품도 먹을 물에 풀어 칠한 뒤 색연필을 더한 작품이다. 먹은 종이 위에서 가장자리를 조금씩 잃고 바다와 밤은 서로 스며든다.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부분이 오히려 희미한 빛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가 잃은 잠으로 걸어 다닌 밤은 검다기보다 비어 있다. 하늘, 바다, 작은 빛 몇 개가 그의 시간을 채웠다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2024년 헤이그 시립 미술관Kunstmuseum Den Haag이 기획한 《Night Wanderers》 전시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지점을 남긴다. 벨기에의 현대 사진가 디르크 브레크만Dirk Braeckman과 스필리아르트를 나란히 세워둔 이 자리는, 백 년의 시간을 가로지르는 두 산책자가 어둠 속에서 발견한 것을 보여준다. 한 명은 먹의 농담으로, 다른 한 명은 렌즈의 시선으로 밤을 표현하지만, 어둠과 그 사이를 메우는 회색의 층위들, 그리고 적막한 여백 속에 떠오르는 희미한 빛이 공통으로 존재한다. 스필리아르트의 그림이 지금의 사진과 닮아 보이는 이유도 단순히 어둡기 때문만은 아니다. 화면 안에 무엇을 더 넣을지보다 어디까지 덜어낼지를 먼저 생각한 듯한 구도 때문이다. 그가 도시를 바라본 방식에는 이미 하나의 프레임이 있다. 이런 그의 태도는, 대상을 프레임 안에 가두는 현대의 사진상 시선과도 맞닿아 있다.
끝없이 멀어지는 도시

colored pencil on paper. ⒸHugo Maertens
스필리아르트의 풍경을 여러 장 이어서 보다 보면 시선이 자꾸 한쪽으로 끌려간다. 가까운 것은 유난히 크게, 먼 것은 순식간에 작아지는 그의 원근법은 〈Vertigo〉에서 더욱 과장된다.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의 나선형 구조를 예고하는 듯한 백색의 계단은 소용돌이처럼 내려가고, 그 꼭대기에는 검은 옷의 여인이 위태롭게 서 있다. 가파른 경사는 더 이상 발을 내디딜 수 없을 것 같은 고립감을 주는데 마치 스필리아르트가 느꼈던 고독 같기도 하다. 대개 우리는 타인의 표정에서 감정의 단서를 찾지만, 그는 사람의 표정을 명확하게 그리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사람과 계단 사이에 놓인 그 아찔한 여백을 통해, 어느 한 지점에서 시작된 고독이 화면 전체의 공기로 전이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거울 앞의 산책자


(오) 〈Autoportrait au gilet jaune〉, 1911 ⒸAgnews Gallery, Brussels
밤의 도시를 향하던 시선은 방으로 돌아온 뒤 자신에게 향했다. 스필리아르트는 스물한 살 무렵부터 자화상을 그렸고 특히 1907년과 1908년 사이 자신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바라보았다. 오르세 미술관은 이 시기에 그의 자화상 작업 대부분이 만들어졌으며 거울 역시 반복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그의 자화상은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높은 이마와 도드라진 광대, 크게 뜬 눈. 빛의 방향을 달리하며 얼굴 한쪽을 어둠 속에 밀어 넣었고 때로는 자신의 모습 자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일그러뜨렸다. 그러나 얼굴만 보고 있으면 오히려 그의 자화상에서 중요한 절반을 놓치게 된다.

ⒸAnvers, Koninklijk Museum voor Schone Kunsten
스필리아르트의 자화상에서는 얼굴보다 거울이 먼저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방 안의 거울에는 그의 모습과 뒤편의 공간이 함께 비치고, 그림 속 방은 실제보다 훨씬 깊어 보인다. 가까이 있는 얼굴은 거울 안에서 한 번 더 멀어지고, 같은 방도 다른 장소처럼 보인다. 밤새 오스텐더를 걷고 돌아온 그는 그렇게 방 안에서도 다시 먼 곳을 바라보았다.
도시가 풍경이 되는 시간

포르투갈의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는 리스본의 밤거리를 걸으며 “낮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밤의 나는 나 자신이다”라고 썼다. 스필리아르트에게도 밤은 비슷한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낮에는 목적지를 향해 지나쳤던 것들이 사람들이 사라진 뒤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지하철을 기다리다 검은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고, 비에 젖은 도로 위로 번지는 가로등 불빛을 오래 바라보게 되는 것처럼. 스필리아르트가 밤의 오스텐더에서 본 것도 그런 장면들이었을 것이다. 같은 도시를 오래 걸었던 사람은 그 도시의 양감과 질감이 배어든다. 그러는 동안 화려한 휴양지는 그에게 몇 개의 선과 빛의 잔상으로 남았다. 모두가 돌아간 뒤에야 또렷해지는 도시와 그 안에 잠시 남아 있는 한 사람. 스필리아르트가 오래 바라본 것은 어쩌면 그 정도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