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시선이 먼저 도착하는 곳

처음 가는 통로를 걷다 보면 아직 열어보지 않은 문들이 나타난다. 눈은 복도의 끝을 먼저 보고, 몸은 그사이에 놓인 것들을 하나씩 만나며 뒤따른다. 그렇게 걸을 때 관심은 대개 그 너머에 있다. 침실에 가기 위해 문을 나서고, 다음 작품을 보기 위해 전시실 사이를 지난다. 목적지가 분명할수록 그곳까지의 길은 빨리 통과해야 할 거리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걷다가 문득 멈춰 서게 되는 곳이 있다.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볼 것이 있는 길이다.
루이스 칸Louis Kahn은 평면을 ‘방들의 사회’라고 표현했다. 방을 어떻게 놓고 잇는가에 따라 그 안의 생활도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 비유를 빌리면 복도는 그 사회를 이어주는 길이다. 건축가는 방의 크기와 모양뿐 아니라 그곳에 이르는 순서도 설계한다. 무엇을 먼저 보여주고 어디에서 잠시 가려둘지, 어느 지점에서 방향을 바꾸게 할지에 따라 걷는 경험이 달라진다.
바다가 먼저 들리는 길

포르투갈 레사 다 팔메이라Leça da Palmeira의 해수 수영장에서는 바다에 가까워지는 동안 오히려 바다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알바로 시자Álvaro Siza가 1960년대에 설계한 이 수영장은 해안도로보다 낮은 곳에 자리한다. 도로에서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면 콘크리트 벽이 점차 주변을 가린다. 아직 보이지 않는 바다를 상상하며 걷다 보면 바다는 먼저 귀로 들린다. 그러다 길 끝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마침내 수영장 물 너머로 바닷물이 이어진 풍경이 나타난다.
처음부터 바다가 보였다면 바다에 시선을 빼앗긴 채 내려갔을 것이다. 그래서 바다 바로 앞에 수영장을 지으면서 바다를 곧장 보여주지 않겠다고 의도한 결심이 흥미롭다. 통로를 걷는 동안 소리로 짐작하던 바다가 모퉁이를 돌자마자 드러날 때의 극적인 감각. 가려졌다 다시 나타나는 순서가 수영장에 들어서는 경험의 일부가 되었다.
집 안을 산책하게 만드는 르 코르뷔지에의 복도

파리의 메종 라 로슈Maison La Roche를 방문했을 때는 하늘색과 적갈색으로 칠한 벽이 먼저 눈에 들어왔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색채를 보며 경사로 같은 복도를 걸었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와 피에르 잔느레Pierre Jeanneret가 설계해 1925년 완성한 이 집은 미술 수집가 라울 라 로슈가 살면서 자신의 회화 컬렉션을 걸어두기 위해 지은 곳이다. 사는 집이자 그림을 거는 집이었다. 화가이기도 했던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의 회화에서 쓰던 색을 집 안의 벽에도 가져왔다. 그림을 걸기 위한 집에서 벽 자체도 바라볼 대상이 되었다.

통로를 지나고 경사로를 오르는 동안에는 같은 공간을 다른 높이와 방향에서 보게 된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곳에 직접 올라서고, 돌아서서 방금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기도 한다. 르 코르뷔지에가 이 집에서 시도한 ‘건축적 산책promenade architecturale’은 그렇게 달라지는 장면을 만나는 일이다. 그림 앞에 멈춰 선 시간뿐 아니라 다음 그림으로 움직이는 동안에도 통로 주변을 살피게 된다.

같은 방식은 1931년 완성된 빌라 사보아Villa Savoye에서도 볼 수 있다. 실내에서 시작한 경사로는 테라스로 연결되고, 다시 바깥의 경사로를 따라 옥상까지 올라간다. 집 안을 걷고 있었는데 어느새 하늘 아래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라 로슈에서는 색칠된 벽과 그림을, 빌라 사보아에서는 집 바깥의 풍경을 만나며 걷는다. 건축적 산책은 멀리 나가는 일이 아니라 집 안에서도 걷는 동안 새로운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다음 작품을 만나기 전



미술관에서는 동선이 명확하다. 복도로 연결된 홀들을 하나씩 방문하는 것. 보고 싶은 작품이 있는 방으로 가고, 관람을 마치면 대게 들어온 문으로 되돌아나온다. 그런데 나오시마의 지중미술관Chichu Art Museum에서는 작품과 작품 사이를 걷는 동안 시선을 붙잡는 것들이 있다.
2004년 문을 연 이 미술관은 세토 내해의 풍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건물 대부분을 땅속에 두었다. 안도 다다오Tadao Ando가 설계한 내부에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의 작품이 상설 전시된다. 지하 미술관이지만 햇빛이 들어온다. 그 빛은 하루의 시간과 계절에 따라 작품과 공간의 모습을 바꾼다.



전시실 사이에서는 콘크리트 벽과 통로, 하늘을 향해 열린 안뜰인 중정을 만난다. 작품을 찾아 걷다가 벽에 떨어진 빛을 보게 되고, 건물 안에 있으면서도 밖과 단절되지 않는다. 작품이 있는 전시실을 나와 걷다 보면 벽에 걸린 그림만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림을 본 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다시 다른 작품이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관람을 마치고 나면 작품과 함께 그사이를 걷던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카를로 스카르파의 교차된 시간

오래된 성을 미술관으로 바꿀 때 어디까지 새로 만들고 어디까지 남겨둬야 할까. 이탈리아 베로나Verona의 카스텔베키오 미술관Museo di Castelvecchio은 조금 다른 답을 보여준다. 중세의 성에서 출발해 여러 차례 용도가 바뀐 건물에는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부분들이 남아 있다.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는 이곳을 손보면서 그 시간의 층위는 그대로 두었다. 오래된 벽 옆에 새로운 구조를 붙이면서 오히려 틈을 남겨 감추지 않는 식이다. 그 경계를 보면 이전부터 있던 부분과 나중에 더한 부분이 구별된다. 관람객이 걷는 길은 작품을 연결하는 동시에 건물의 이런 세부를 가까이에서 보게 한다.

말을 탄 인물을 표현한 중세 고딕 조각 ‘칸그란데 기마상’ 주변에서도 옛것과 새것이 나란히 보인다. 오래된 조각은 현대적인 콘크리트 받침 위에 놓이고, 주변에는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벽과 그것을 잇는 통로가 함께 보인다. 조각 하나를 보고 있지만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아래의 구조와 뒤편의 건물로 옮겨간다.
새로 만들면서 옛 것을 남겨둘 때는 대게 새것으로 잘 감싸기 마련인데도, 스카르파는 반대로 두 시간이 드러나도록 재료를 엇갈려 놓았다. 새로 만든 부분을 오래된 것처럼 꾸미지 않았기에, 오히려 옛 건물의 모습이 더 선명해진다. 관람객은 그 사이를 오가며 서로 다른 시대의 재료와 방식을 비교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작품을 보러 가는 길에 건물이 바뀌어온 과정도 함께 보인다.
눈이 지나간 자리

파울 클레Paul Klee는 우리의 눈이 모든 부분을 동시에 선명하게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그림의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눈을 옮겨가며 전체를 알아본다는 것이다. 그림 앞에 가만히 서 있는 동안에도 시선은 계속 움직인다.

눈은 작품 안에 자신을 위해 마련된 길을 따라 움직인다.
ㅡ 파울 클레(Paul Klee)
복도에서는 벽의 선을 따라 먼저 움직인 눈을 발이 뒤따른다. 걷다가 멈추고, 고개를 돌리고, 조금 전 지나온 곳을 다시 바라본다. 입구에서 하나의 긴 거리로 보였던 곳에 창이 있고, 빛이 들고, 옆방으로 향하는 문이 나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다. 눈은 먼저 끝에 닿았지만, 그곳까지 무엇이 있는지는 직접 걸어가야 알 수 있고, 그 과정도 즐길 수 있다면 무엇을 보았는지도 더욱 오래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