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임스 부부가 사랑한 너무너무 많은 것들

흙으로 만든 종을 흔드는 경험.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처럼 맑고 경쾌한 소리가 난다. 임스 부부는 이런 종을 집 현관의 초인종으로 사용했다. 그들이 직접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 집에 걸려 있던 모습으로 기억되며 ‘임스 벨’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그들이 거실에 두었던 검은 나무 새 역시 만든 사람이 아닌, 곁에 두고 사용한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다. 모더니즘에 색채와 유쾌함을 더했던 두 사람의 집에는 그런 것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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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스 부부가 사랑한 너무너무 많은 것들

흙으로 만든 종을 흔드는 경험.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처럼 맑고 경쾌한 소리가 난다. 임스 부부는 이런 종을 집 현관의 초인종으로 사용했다. 그들이 직접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 집에 걸려 있던 모습으로 기억되며 ‘임스 벨’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그들이 거실에 두었던 검은 나무 새 역시 만든 사람이 아닌, 곁에 두고 사용한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다. 모더니즘에 색채와 유쾌함을 더했던 두 사람의 집에는 그런 것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Editorial

임스 부부가 사랑한 너무너무 많은 것들

흙으로 만든 종을 흔드는 경험.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처럼 맑고 경쾌한 소리가 난다. 임스 부부는 이런 종을 집 현관의 초인종으로 사용했다. 그들이 직접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 집에 걸려 있던 모습으로 기억되며 ‘임스 벨’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그들이 거실에 두었던 검은 나무 새 역시 만든 사람이 아닌, 곁에 두고 사용한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다. 모더니즘에 색채와 유쾌함을 더했던 두 사람의 집에는 그런 것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가장 유명한 모더니스트 부부의 집

Eames House, Case Study House No. 8 ⒸEames Office

찰스Charles Eames와 레이 임스Ray Eames의 이름을 떠올리면 대개 부드럽게 휘어진 합판 의자와 다채로운 색의 유리섬유 셸, 몸을 깊숙이 받아주는 가죽 라운지 체어가 먼저 떠오른다. 색과 곡선, 편안함을 놓치지 않았던 디자인. 오늘날 우리가 ‘미드센추리 모던Mid-century Modern’이라 부르는 이미지의 상당 부분을 만든 사람들이니 그들의 집 역시 잘 고른 가구와 경쾌한 색이 어우러진, 빈틈없이 조율된 공간이었을 것 같다.

그러나 1949년 로스앤젤레스에 완성된 ‘임스 하우스,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No. 8Eames House, Case Study House No. 8’의 실내 사진을 보면 예상은 금세 빗나간다. 디자이너의 집보다 수집가의 집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철골과 유리로 만들어진 집 안에는 물건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책이 가득 꽂힌 선반 사이에 인형이 서 있고, 그 앞에는 조개껍데기와 작은 그릇, 식물이 놓여 있다. 나란히 꽂힌 책 앞에 다른 책들이 가로로 쌓여 있고, 의자 곁에는 색과 무늬가 다른 방석이 포개져 있다. 하나를 보다가 그 뒤에 놓인 다른 물건을 발견하며, 자꾸 사진 속을 들여다보게 된다.

ⒸEames Office

이것은 두 사람이 오래도록 궁금해했던 것들이 차곡차곡 쌓인 풍경이다. 가구의 구조를 간결하게 만드는 일과 생활에서 좋아하는 물건을 덜어내는 일은 달랐던 모양이다. 빈틈없이 정돈된 모더니즘의 이미지보다, 여기저기 시선을 빼앗기는 이 집이 두 사람을 조금 더 가까이 느끼게 한다.

문 앞에서 만나는 임스 벨

Oaxacan wedding bell. A clay clapper hangs inside its body, which opens out in four directions. ⒸAscetique

한 공예품에 개인적인 의미가 담기게 되는 것은 물건의 서사가 일상에 녹아들 때다. 멕시칸 웨딩 벨의 네 방향으로 벌어진 검은 몸체는 처음 보면 종보다 작은 조각처럼 보인다. 안쪽에는 점토로 만든 추가 달려 있어 움직이면 벽면에 부딪혀 소리를 낸다. 종을 당기면 몸체가 움직이며 풍경처럼 경쾌한 소리가 난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표면에는 흙의 질감이 남아 있어 눈으로 보던 투박한 모양과 맑은소리가 조금 뜻밖에 어울린다.

우연히 이 제품을 구매한 이후 임스 부부가 집 현관에서 도자기 종을 초인종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임스 벨’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그들이 디자인한 물건 같지만, 두 사람과 이 종의 관계는 직접 고르고 사용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철골과 유리로 만든 집에 찾아온 손님을 흙으로 빚은 종이 맞이하는 영상 속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모더니즘의 상징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전 세계의 민속공예품을 모았다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그것을 실제로 사용한다는 점이 더 좋았다. 귀하게 모셔두는 대신 손이 닿는 곳에 걸어두고 제 소리를 내게 하는 것. 공예를 감상의 대상이기 전에 생활에서 쓰는 물건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만들지 않았지만 임스의 것이 된 새

ⒸEames Office

집 안으로 시선을 옮기면 더 익숙한 물건이 나타난다. 긴 꼬리와 가느다란 두 다리, 조금 치켜든 머리를 가진 검은 나무 새. 오늘날 ‘임스 하우스 버드Eames House Bird’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새 역시 임스 부부가 디자인한 것이 아니다.

Vitra’s Eames House Bird, based on a wooden bird owned by Charles and Ray Eames. ⒸEames Office

임스 오피스는 원래의 새를 미국 애팔래치아 지역의 민속공예품으로 소개한다. 부부가 곁에 두었던 이 물건은 거실뿐 아니라 그들이 찍은 사진과 〈Wire Chair & Bird〉 광고에도 등장했다. 여러 대의 와이어 체어가 겹쳐 놓인 사진을 보면, 복잡하게 얽힌 다리 사이로 검은 새 한 마리가 보인다. 의자의 가느다란 선들을 따라가던 눈이 새의 검은 몸체에서 멈춘다. 가구를 보여주는 사진인데, 그사이에 숨어 있는 새를 먼저 발견하게 된다.

Vitra’s reproduction, Dubbed the Eames House Bird ⒸAll Roads Lead to Hom

그렇게 집과 사진 속에 머물던 새는 훗날 비트라Vitra가 원래의 소장품을 바탕으로 제품화하면서 더 많은 사람의 집으로 들어갔다. 임스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물건이지만, 출발점에는 다른 누군가가 만든 작은 목조 새가 있었다. 멕시칸 벨과 새는 그들이 디자인한 의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임스 부부를 보여준다. 좋아하던 물건을 생활과 일 속에 끌어들이면서, 직접 만들지 않은 것에도 자신들의 이름이 남게 했다는 점에서다.

팽이가 도는 동안

Title image from Charles and Ray Eames’s film 〈Tops〉(1969) ⒸEames Office

임스 부부가 장난감을 얼마나 진지하게 바라보았는지는 영화 〈Tops〉(1969)를 보면 알 수 있다. 1969년에 만든 이 영화에는 123개의 팽이가 등장한다. 미국의 영화 음악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엘머 번스타인Elmer Bernstein의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크기와 모양이 다른 팽이들이 돈다. 약 7분 동안 팽이가 도는 모습을 보고 있을 뿐인데, 한 편의 영상 시를 보는 듯하다. 작은 몸체가 회전하고 기우뚱하는 움직임이 음악과 어우러지니 저마다 다른 춤을 춘다. 

팽이는 멈춰 있을 때와 돌 때가 다르다. 손으로 집어 들면 나무나 금속으로 만든 작은 물건이지만, 돌리면 무늬가 섞이고 몸통이 기울며 움직임이 생긴다. 곧 쓰러질 것처럼 흔들리다가 조금 더 버티기도 한다. 눈은 어느새 모양보다 움직임을 따라간다. 얼마나 더 돌 수 있을지 궁금해져, 멈추는 순간까지 보게 된다.

김수영의 시집 《달나라의 장난》에도 아이가 돌리는 팽이에 시선을 빼앗긴 어른이 나온다.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 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ㅡ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

하던 이야기도 잊은 채 한 번 더 보고 싶어지는 아주 단순하고 분명한 움직임. 임스 부부의 영화에서도 하나의 팽이가 멈추면 다른 형태를 한 다음 팽이가 어떻게 돌지 궁금해진다. 작고 단순한 장난감 앞에서 어른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무엇이 균형을 잡고, 어떻게 기울고 넘어지는지 알아간다. 물리법칙이라는 말을 배우기 전에 손으로 먼저 만나는 일들이다. 그런 장난감은 어쩌면 예술에 처음 입문하는 계기일 수도 있다. 눈을 사로잡는 색과 무늬,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형태, 자꾸 반복하고 싶은 움직임이 작은 물건 하나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손바닥에 올려놓을 만큼 작은 물건에도 이렇게 보고 느끼고 알아갈 것이 많다. 어른이 되어 다시 보는 팽이 하나하나가 남다르다.

임스 부부는 팽이의 구조를 길게 설명하는 대신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엇이 대단한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미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끼워 맞추면

임스 부부가 직접 만든 놀이도 있다. 1952년 처음 선보인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다. 다른 사람이 만든 장난감을 들여다보던 관심이, 이번에는 직접 놀이를 만드는 일로 이어진다. 처음 만든 패턴 덱Pattern Deck에는 여러 표면에서 찾아낸 무늬와 질감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고, 이후의 픽처 덱Picture Deck에는 동물과 식물, 광물의 이미지가 담겼다. 카드마다 여섯 개의 홈이 나 있어 서로 끼울 수 있다. 어떤 카드를 고르고 어느 방향으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평평했던 이미지들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일어선다.

An adult and child building structures with interlocking House of Cards. ⒸEames Office

보통 무늬를 연결할 때는 서로 어울리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고르게 된다. 하지만 저마다 다른 이미지가 담긴 카드들은 평소라면 해보지 않았을 조합을 시도하게 만들고, 그렇게 이어진 이미지들은 어느새 입체가 되어 작은 건축이 된다. 이렇게 탑을 이룬 카드들을 보니 물건이 마구 쌓여 있던 임스 하우스의 선반이 떠오른다. 책과 인형, 조개와 식물처럼 서로 다르지만, 좋아하는 것들이 한자리에 놓여 만드는 풍경. 관계없어 보이는 카드들이 썩 잘 어울리는 모습은 그들의 일상에서 떼어져 나온 작은 조각 같기도 하다.

너무 많은 것들을 좋아하는 일

ⒸEames Office

임스 부부는 물건을 많이 모았지만, 그것들을 집 안에 보기 좋게 놓아두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곁에 두고 사용하던 물건들을 사진과 영화에 등장시키고, 때로는 제품으로 만들어져 다른 사람의 생활에 들어갔다. 두 사람의 취향과 기억이 담겼던 물건에 이제는 다른 이들의 추억과 의미가 쌓인다.

우리는 대개 디자이너와 그들이 만든 물건을 연관시켜 떠올린다. 그러나 볼 것으로 가득한 이 집은 두 사람을 알아갈수록 그들이 무엇을 만들었는지만큼이나 무엇을 좋아했는지 궁금하게 한다. 누군가 빚은 종과 깎아 만든 새,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팽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사람들. 남이 만든 것을 좋아하는 모습에서, 유명한 이름 뒤에 있던 두 사람의 웃는 모습이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진다.

Charles and Ray Eames. ⒸEames Office

처음에는 임스 부부도 멕시칸 웨딩 벨을 사용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종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종을 당길 때마다 들리는 것은 흙으로 만든 추가 벽면에 부딪히는 맑은소리다. 물건에 얽힌 남의 이야기를 한참 따라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소리는 어느새 내 일상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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